미국 서부 개척시대에는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이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국가 체제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장 갱단이 활보하던 때였다. 보안관 정도로는 치안이 충분하지 않았다.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기 구매 등에 많은 돈이 필요했다. 돈을 많이 번 상인이나 주민이 더 많은 치안 분담금을 내면서 마을 수호에 기여했고, 그 액수만큼 주민의 칭송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의 미국 기업들은 절세를 하기 위해 본사를 유럽 등지로 옮기는 사례가 빈번해 비판을 받는다.
▦ 조세(租稅)의 조(租)와 세(稅)에는 둘 다 벼 ‘화(禾)’가 들어 있다. 세(稅)에는 바꿀 ‘태(兌)’도 있다. 태(兌)는 ‘빼내다’는 뜻도 있어, 수확한 벼(쌀) 가운데 일부를 국가가 세금으로 빼내 간다는 말이겠다. 당초 조(租)는 수확물 일부를 땅 주인에게, 세(稅)는 국가에 바치는 것을 의미했으나 나중에는 구분이 없어졌다. 지금으로 따지면 국가가 법인이나 국민의 수입 일부를 세금을 매겨 빼내 간다는 의미겠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금이라고 하면 늘 국가에 ‘뜯기는’ 것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다.
▦ 정부ㆍ여당의 초대기업 및 초고소득자 증세 방침을 둘러싸고 논쟁이 한창이다. 가관인 것은 증세 작명을 둘러싼 신경전이다. 여당이 야당 시절 붙인 명칭이 ‘부자 증세’로 명쾌하지만, 부정적 이미지가 상당하다는 게 부담이다. 문재인 정부가 ‘증세는 없다’고 한 것을 번복하기 민망했던지, ‘핀셋 증세’ ‘존경 과세’ ‘사랑 과세’ ‘슈퍼리치 증세’ 등으로 대체하려고 한다. 소득재분배 차원으로 보아 마땅하나, 서민과 무관한데도 부자들 인심까지 잃지 않으려고 몸부림친다. 반면 야당은 ‘세금 폭탄’ ‘징벌 증세’ 등으로 반격하고 있다.
▦ 일본 심리학자 나이토 요시히토는 책 <말투 하나 바꿨을 뿐인데>에 ‘라벨 효과’를 소개했다. 예를 들어 “넌 마음이 굉장히 넓구나. 누구에게나 친절하구나”라는 말로 상대방에게 ‘마음 넓고 친절한 사람’이라는 라벨을 붙여 주면 실제로 상대방도 마음이 넓어지고 불친절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반면 “넌 쓸모 없어”라는 말로 ‘쓸모 없는 사람’이란 라벨을 붙이면 멀쩡한 사람도 쓸모 없이 되어 간다. 증세에 이런저런 이름을 들이대는 것도 마찬가지다. 속이 뻔히 보이지만,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했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o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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