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단체들, 노총 예산 지원에 항의
“혈세로 시위장비 지원하나” 반발
지원 철회 거부 시 주민감사 청구
윤장현 광주시장, 친환경車 사업에
노조 협조 구하려다 역풍 맞은 꼴
광주시민들이 거리로 나설 태세다.
정부는 예산이 없어 증세할 판인데, 왜 광주시는 허튼 곳에 혈세를 쓰려고 하느냐며 반발하면서다. 시가 최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에 집회나 시위에 사용될 수 있는 차량과 스피커 등 음향장비 구입 비용으로 1억6,800만원을 지원키로 하자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다.
광주시주민자치협의회는 25일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윤장현 광주시장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 차량과 음향장비를 시 예산으로 지원키로 한 데 대해 시민들에게 해명하고 예산 집행을 중지하라”고 촉구했다. 협의회는 “양대 노총에 예산을 지원하는 것은 내년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선심성 예산이자 대중적 가치가 없는 예산”이라며 “시가 예산 집행 중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주민의 힘으로 용납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실제 협의회는 양대 노총에 대한 예산 지원이 철회되지 않으면 세금 낭비를 막기 위해 광주시를 상대로 주민감사를 청구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협의회는 윤 시장의 해명 시한을 잠정적으로 다음달 5일까지로 잡았다. 협의회는 이 때까지 기다려본 뒤 뚜렷한 답변이 없으면 주민감사 청구를 위한 서명운동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앞서 광주시는 올해 1회 추가경정예산안을 짜면서 민주노총에 11인승 스타렉스 승합차와 포터, 음향장비(앰프 등 18종) 구입비 지원 예산으로 8,600만원을 반영했다. 한국노총에도 스타렉스와 카니발, 음향장비(10종) 구입 지원 명목으로 8,200만원을 편성했다. 이 예산안은 11일 광주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의에서 “광주시가 양대 노총의 집회ㆍ시위를 지원하는 꼴”이라는 일부 위원들의 반대에 부딪혔지만 원안 통과됐다.
양대 노총에 예산을 지원하려다가 시민들의 반발에 직면한 광주시는 예산을 집행해야 하는지에 대해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여론의 눈치를 살피는 등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시는 “노동자의 권익 증진을 위해 양대 노총에 예산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해명하면서도 “예산 지원을 반대하는 여론에 대한 설득이 이뤄진 뒤 예산을 집행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협의회 관계자는 “노동자의 권익 증진이 명분이라면 거대 노동단체가 아니라 어려운 환경에 놓인 단위사업장 노조에 예산을 지원하는 게 맞는 것 아니냐”며 양대 노총에 대한 예산 지원 명분의 취약성을 꼬집었다.
이를 두고 윤 시장이 친환경자동차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노동계의 협조를 얻어내려다 역풍을 맞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광주지역 95개 동(洞) 주민자치위원장을 비롯해 3,500여명의 회원을 둔 친관(親官) 성향의 주민자치협의회가 주민감사 청구를 내세워 윤 시장의 민간단체 사업비 지원 정책에 대해 잠복해 있던 불만을 노골적으로 터뜨렸다는 점에서 윤 시장도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는 해석도 제기되고 있다.
윤 시장이 협의회의 주장대로 예산 집행을 하지 않으면 양대 노총이 각을 세울 게 뻔하고, 반대로 예산 집행을 강행하면 주민단체들과는 등을 질 수밖에 없는 딱한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재선을 노리는 윤 시장에겐 이래 저래 악재가 아닐 수 없는 셈이다. 자칭 ‘시민시장’이라는 윤 시장이 시민들의 뜻을 받들지, 아니면 거스를 것인지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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