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대법원은 성씨의 한글 표기를 개인의 의사에 맡긴다는 취지로 지금의 가족관계등록 예규를 개정하였다. 이른바 두음법칙을 강제로 따라야 했던 1996년부터의 조치를 벗어나 성씨 표기가 자율화된 것이었다. 그 결과 나(羅), 유(柳), 이(李) 등 원음에 ‘ㄹ’이 있는 성씨의 표기를 원음대로 고칠 수 있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개명을 하였다 한다.
두음법칙은 우리말의 오랜 습성 중 하나로, 어떤 소리나 소리의 연쇄가 단어 첫머리에 쓰이는 데 제약이 있어 아예 나타나지 않거나 다른 소리로 바뀌는 현상을 일컫는다. 예를 들어 받침 ‘ㅇ’은 우리말에서 단어 첫 소리로 쓰이지 못하며, ‘ㄹ’은 ‘ㄴ’으로 바뀌거나 없어진다. 이러한 소리 차원의 현상이 표기에 반영된 결과가 한글 맞춤법의 두음법칙 조항이다. 즉, 소리가 이렇게 바뀌니 표기도 소리와 같게 하자는 것이다.
사람의 이름이 개인의 것이고 헌법에서 보장하는 자기결정권이 적용되어야 하는 대상이므로 여기에 두음법칙이 강제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결정은 많은 이들의 호응을 받았다. 그런데 발음까지 표기대로 하는 것이 맞다고 판결이 내려진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대법원은 단지 표기만을 다양하게 허용했을 뿐이다. 그래서 ‘라’와 ‘류’로 적고 각각 ‘나’와 ‘유’로 읽거나 부르는 것은 당시 결정의 취지를 어기는 것이 아니며 여전히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원음 표기를 사용하는 분들 가운데 그 발음도 개인의 정체성을 이루는 요소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발음 역시 표기대로 해 주기를 바라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에 대해서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김선철 국립국어원 언어정보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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