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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레밍을 비웃는 레밍 씨에게

입력
2017.07.25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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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레밍씨. 먼저 ‘레밍 발언’으로 인해 곤욕을 치르고 있는 점에 대해 유감의 뜻을 전해요. 전 “한국인들이 레밍 성향이 있다”는 님의 명제 자체가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레밍은 평소 한 곳에 무리 지어 살다가 먹이가 줄어들면 새로운 먹이를 찾아 떼로 이동하지요. 생존을 위해 남을 따라 줄줄이 똑같이 움직이는 과정에서 때론 집단광기에 사로잡혀 서로를 물어뜯고, 물불 가리지 않고 한 방향으로 전진하다가 종국엔 벼랑 끝에서 줄줄이 떠밀려 떨어져 죽는 것으로 유명하죠.

‘헬조선’의 정글에서 살면서, ‘라이온 킹’의 물소 떼보다 수백 배나 더 거대하고 두려운 레밍 떼가 질주하는 장면을 심심찮게 봤답니다. 용감한 사자이든, 의연한 늑대이든, 그들을 정면으로 가로막으면서 ‘멈추라!’고 외칠 지도자는 정글 세계에 존재하지 않지요. 님이 언론과 SNS에 남긴 말들을 보니, 아마도 ‘팩트’를 입체적으로 확인하지 않고 쉽게 흥분하고 집단적으로 비판하는 사람들이 레밍으로 보였나 봅니다.

근데 전 그 부분에서는 관점이 다르답니다. 레밍은 천성이 자기와 자기 가족의 먹잇감밖에는 관심이 없어서, 공적이고 사회적인 비판 따위는 하면서 살지 않아요. 레밍 무리의 행태를 관찰해 보니, 전체가 맨 앞의 우두머리를 바라보고 움직이기로 결정하는 게 아니더군요. 레밍은 애초에 무리(공동체)의 앞과 끝을 고루 조망하며 모두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성찰할 시야와 여유가 없어요. 그냥 옆에서 뛰니까 나도 뒤처질세라, 옆의 경쟁자보다 더 빨리 앞으로 가려고 기를 쓸 뿐이지요.

언뜻 미물의 맹목성이 두드러지는 것 같지만, 저는 레밍들이 나름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영약하고 차가운 두 가지 전략이 머리와 몸에 익어 있더군요. 첫째, 무리의 대세를 따라 생존 확률을 높일 것. 둘째, 그 안에서 경쟁자들보다 한 걸음 더 빠르게 움직여 ‘나’의 생존 확률을 높일 것.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네 삶 전반이 그렇지 않나요?

우리 애가 뒤처질까 너도나도 진작부터 미친 선행학습을 시키고,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판단보단 대세가 어느 쪽인가 냄새를 맡으면서 옆의 동료를 물어뜯거나 밟고 달리는 미물들이 너무 많아요. 대학원 동료가 교수에게 갑질과 성추행을 당해도, 동료가 상사에게 부당한 지시와 언어폭력을 당해도, 그 누구도 “다들 멈춰! 이건 미친 짓이야!”라고 포효하진 않더군요. ‘쟤가 너보다 파워가 있어. 일단 참고 살아’라고 속삭이며, 무리에서 이탈하지 않는 게 레밍의 본능이자 미덕이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 맹목적인 경쟁과 순응의 질주를 막아보겠다고 촛불을 들고, 캠퍼스를 점거하고, 국가의 시민에 대한 생명권 수호의 책임을 물으며 세월호 유가족의 비극에 같이 슬퍼하던 사람들이 당신의 눈에는 레밍으로 보이나요? 고작해야 자신의 배고픈 과거를 탄식하며, 주류에 들기 위해 치열하게 몸부림치고, 나름 열심히 살았다는 사실이 사회 정의에 대한 무감각과 자신의 비겁함에 대한 면죄부라도 되는 양 시민들의 비판을 조롱하는 당신이야말로 그저 자신의 무리와 ‘주류 정서’에 속해 있는 것만으로 안정감을 느끼는, 시야 좁은 레밍이 아닌지요?

그만하세요, 레밍씨. 오만한 광신도가 ‘이 사탄아!’를 외친다고 구원받지 않듯이, 되레 남을 레밍이라고 부른다고 당신이 레밍이 아닌 것은 아니에요. 제발 부탁해요. 당신이 레밍 무리에서 나오리라는 기대는 안 해요. 단, 당신의 밈(meme)을 공유하는 새끼들은 이제 그만 증식시켜 주세요. 동료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이성적 집합행동과, 그저 개인의 권력과 사익 추구를 위해 감히 국가를 들먹이며 협잡을 일삼은 무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미물이 더 이상 정글을 지배하지 않도록. 어흥!

김도훈 아르스 프락시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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