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7월, 미국이 오세아니아 미크로네시아 마셜제도 비키니 환초(環礁ㆍ고리 모양 산호섬)에서 주요 언론사 취재진들을 불러모은 뒤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의 위력 공개실험을 실시했다. 크로스로드 작전(Operation Crossroads). 에메랄드 빛 산호 해역에는 2차 대전에서 노획한 일본 전함 등 배 95척이 함대 편제로 배치됐다.
그 해 2월 개봉한 리타 헤이워드 주연의 영화 ‘길다(Gilda)’에서 이름을 딴 23㏏급 원자탄 ‘길다’는 7월 1일 B-29 전략폭격기에 의해 공중 투하됐다. 하지만 폭탄은 목표 지점에서 649m 벗어나 158m 상공에서 폭발하는 바람에 실패로 끝났다. 7월 25일, 두 번째 폭탄 ‘비키니의 헬렌(Helen)’은 수심 27m 지점에서 폭발했다. 두 차례 실험, 특히 ‘베이커(Baker)’라 이름 붙은 두 번째 수중 폭발로 비키니 해역은 방사능 바다로 변했다. 국제원자력위원회가 인류 최초의 핵 재난으로 꼽는 게 두 번째 실험이었다. 미국은 당초 예정했던 세 번째 실험 계획을 백지화했다.
미국의 비키니환초 핵실험은 크로스로드 작전을 시작으로 57년까지 11년간, 수소폭탄을 포함해 23회 이어졌다. 46년 이주에 동의해 인근 롱게릭(Rongerik)환초 등지로 이주했던 주민 167명은 낙진 피해가 확산되면서 더 먼 섬으로 연쇄 이주해야 했다. 실험 종료 12년 만인 69년 주민들의 귀향이 허용됐지만, 지하수 오염 사실이 밝혀져 78년 다시 섬을 떠나야 했다. 2014년 컬럼비아대 연구팀이 비키니 등을 현지 조사한 결과 감마선 수치는 주거에 적합한 수준으로 낮아졌으나 식수와 어자원 등의 오염 가능성 때문에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비키니 핵실험은 냉전ㆍ핵군비 경쟁의 신호탄이었다. 러시아가 49년 핵 개발에 성공했고, 영국 프랑스 등이 뒤를 이었다. 미국은 54년 비키니 섬 주민들에게 섬 정화 및 생존 보장을 위한 1억5,000만 달러 위탁기금을 적립했고, 93년 1억2,000만 달러 위로 보상금을 지급했다. 거기에는 이후 법원 판결 등을 통해 피해보상을 목적으로 미국 정부를 고소할 수 없고, 마셜제도 내에서만 쓸 수 있다(미국 본토 이주 방지)는 조건이 달렸다.
최근 외신은 마셜제도의 여러 섬들이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바다에 잠기고 있다고, 비키니의 주민들이 이젠 기후난민이 될 운명이라고 전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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