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통과시킨 여야가 증세 문제로 또다시 격돌하고 있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24일 한 방송에 출연해 “마치 짜고 치듯 여당에서 들고 나온 증세론은 부자 증세라는 미명하에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도 증세 반대에 가세했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국민적 공감대나 야당과의 합의는 없었다”고 부정적 의견을 피력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모처럼 추경안 처리에서 보인 국민의당, 바른정당 간 신(新)3당 공조가 증세안 처리에서도 가동될 것으로 기대했다. 여당의 낙관론은 두 야당 또한 복지 확대를 강조하며 법인세ㆍ소득세 인상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점에 비추어 정책 공조의 여지가 크다고 보았기 때문일 성싶다. 실제 한국당을 제외한 대다수 정당이 대선 과정에서 ‘중(中)부담ㆍ중복지 모델’에 찬성했고, 이를 위한 증세 필요성을 인정했다. 문제는 야권이 추경이나 증세 문제뿐만 아니라, 총리 임명동의안ㆍ정부조직법 개정안 등을 놓고 사사건건 정략적 이해에 따라 찬반을 오가는 행태를 보인다는 점이다. 여당이 재적 과반에 미달하는 다당제 구조에서 언제까지 이런 소모적 다툼이 이어질지 걱정스럽다.
지난 총선 표심이 다당제 구도를 만들어 낸 것은 양당제 폐해가 그만큼 심각했기 때문이다. 과거 거대 여야가 경쟁하는 구도에서는 야당이 강경투쟁으로 존재감을 부각하려 한 결과 극한 대립과 국회운영의 비효율성이 두드러졌다. 반면 다당 구도였던 노태우ㆍ김대중 정부에서는 캐스팅보트를 쥔 제3당이나 4당이 협상의 틈새를 넓혀 준 덕분에 법안 처리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런 다당제의 장점을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 원내 107석의 거대야당인 자유한국당은 국민 지지율이 한 자릿수에 머물 정도로 지리멸렬인 데도, 과거와 같은 1대 1 구도를 다시 만들려는 환상에 젖어 있다. 개혁과 쇄신으로 보수 가치를 다시 세우라는 국민적 요구를 외면한 채 여당 발목잡기로 일관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또한 이념이나 정체성을 팽개친 채 사소한 이견에 매달려 국회를 마비시키고 있다.
야당은 집권세력 견제라는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국민적 동의가 끝난 사안이나 대선 공통 공약에 대해선 여당과 협조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여당이 다당제 구도에서는 안정적 협치 시스템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명심해야 함은 물론이다. 여야 모두 국회 운영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다당제의 장점을 살려 나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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