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90년대를 풍미했던 미국의 팝스타는 익살꾼이었다. “라이트 히어 웨이팅 포 미?(Right Here Waiting for Me?)” 24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 가수 리처드 막스는 자신의 히트곡 ‘라이트 히어 웨이팅’ 제목을 빗대 ‘저를 보려고 바로 여기서 기다렸나요’라고 장난스럽게 먼저 인사했다. 그는 10월12일 인천 남동체육관을 시작으로 14일 서울 고려대 화정체육관, 15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공연을 앞두고 홍보를 위해 지난 23일 한국을 찾았다.
24일 오후 한국일보와 단독으로 만난 막스는 갸름한 얼굴에 초록색 눈이 인상적인 미중년이었다. 그는 인터뷰 틈틈이 농담을 던지며 웃음을 잃지 않았다. 막스는 "버나드 박이 나보다 노래를 더 잘 부르면 초대하지 않을 것"이란 농담도 했다. 가수 버나드 박은 2014년 SBS 오디션 프로그램 ‘K팝스타 시즌3’에서 막스의 ‘라이트 히어 웨이팅’을 불러 화제를 모았다. 내한 공연에 초대하고 싶은 한국 가수를 묻자 자신의 노래를 부른 버나드 박을 언급하며 또 한 번 웃음을 준 것이다
만남은 유쾌했지만, 이번 입국까지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막스는 애초 지난 6월에 콘서트를 계획했다가 한 달 전인 5월에 돌연 취소했다. 한반도 정세 불안이 이유였다. 막스는 지난해 국내 항공기에서 만취한 승객의 기내 난동을 제압해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고, 의인 수식까지 얻었다. 하지만 그는 한반도 위기설에 방한을 꺼리는 듯한 인상을 줘 싸늘한 눈총을 받기도 했다. 막스는 “미국에서 뉴스만 보고 한반도 상황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고 했다. 당시 미국 언론은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의 한반도 주변 이동을 거론하며 국내와 달리 한반도 정세를 매우 불안한 것으로 보도했다.
막스는 이번엔 싱가포르 국적기를 타고 입국했다. 기내 난동이 벌어진 국내 항공사 비행기는 “앞으로 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불의 참지 못해… 방한 연기는 너무 죄송”
-유명인이라 난동 승객을 제압할 때 망설여지지 않았나.
“두렵긴 했다. 하지만 만취한 남성 승객은 미쳐있었다. 승객들을 공격했다. 여성 승무원에게 신체적 위협을 가해 상해를 입힐 정도였다. 다른 승객들과 함께 그를 제압할 수밖에 없었다.”
-여성 승무원이 공격 당해 용기를 낸 건가.
“남성이 여성을 아무 이유 없이 공격하는 걸 바라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만취한 승객을 3~4명이 같이 제압 했다. 먼저 나선 건 나였지만.”
-기내 난동 사건에 대한 승무원들의 대처 미숙을 비판하기도 했다.
“기내 난동 승객의 진압은 승무원들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일이다. 일이 벌어진 뒤 (진압을) 시작한 게 아쉬웠다. 여성 승무원은 굉장히 좋은 사람인데 홍역을 많이 치렀다. 항공사에서 기내 난동 승객 대처 매뉴얼을 바꾼다고 들어 기쁘다.”
-감미로운 목소리로 한국에선 부드러운 이미지가 강하다. 기내 난동 승객을 제압했고 SNS 소통도 활발히 한다. 인생의 좌우명이 무엇인가.
“‘생각하는 대로 이뤄진다’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삶도 부정적으로 변한다. ‘할 수 있다’란 생각으로 긍정적으로 살려 노력한다.”
-한반도 정세를 이유로 방한을 취소해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많은 지인이 말렸다. 군사적 긴장감 때문이다. 그때는 계속해서 한반도의 긴장에 관한 뉴스가 나왔다. 돌이켜보면 (그 보도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실제보다 과장될 수도 있다. 그런데 주변에서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이 ‘지금은 안 된다’고 했을 때 ‘싫다’고 거절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공연을 취소하는 것은 옳지 않고 한반도 긴장이 심하면 공연을 연기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공연 석 달 전 한국을 찾은 데는 관객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작용했다. 너무 죄송하다.”
“링고 스타와 신곡 작업… 노래 멈추지 않을 것”
1987년 1집 ‘리처드 막스’를 낸 막스는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데뷔곡 ‘홀드 온 투 더 나이츠’로 미국 음악차트 빌보드에서 1위를 해 바로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엔드리스 서머 나이츠’를 비롯해 ‘돈트 민 낫싱’ 등 7곡이 연속으로 차트 5위 안에 들었고, ‘나우 앤 포에버’로 큰 사랑을 받았다. 그는 작곡가로도 명성이 높다. 미국 보이그룹 엔싱크의 노래 ‘디스 아이 프로미스 유’를 비롯해 리듬앤블루스 가수 루더 반드로스의 ‘댄스 위드 마이 파더’를 만들어 주목 받기도 했다.
-가수 인생의 큰 위기는 언제였나.
“내 삶은 놀라울 정도로 축복받고 성공적이었다. 지금보다 행복할 순 없다. 활동한지 30년이 됐다고 생각하니 나이 든 느낌이다(웃음). 데뷔 곡을 세월이 많이 흘러도 많은 분이 따라 해 줘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뿐이다.”
-’나우 앤 포에버’에 얽힌 사연은 있나.
“독일에 친구가 있다. 그 친구와 약혼자를 위해 노래를 불러준 적이 있다. 그런데 약혼자가 결혼 확답을 주지 않아 계속 노래했다. 결국 “알았어 할게”라고 결혼을 약속해 노래를 마쳤다(웃음).”
-낭만적이다.
“내일 출국한다. 집에 돌아가면 아내가 특별한 저녁을 준비해 줄 거다. (26일 돌아가면) ‘홀드 온 투 더 나이츠’가 1위를 한 지 꼭 30년이 되는 날이라 서로 축하하기로 했다.”
-딱히 노래로 구설에 오른 적이 없다. 음악 활동을 하는 데 자기만의 철칙이 있나.
“립싱크를 하지 않는다. 그게 내 철칙이다. 물론 1980년대 이탈리아 TV쇼에 출연했을 때 ‘모두 립싱크를 해야 한다’고 해 무척 화를 내면서 할 수 없이 립싱크를 한 적은 있다.”
-새로 작곡한 노래는?
“(비틀스 드러머인) 링고 스타와 만든 노래가 있다. ‘스피드 오브 사운드’다. 스타가 올해로 일흔일곱이다. 계속 멈추지 말고 늙지 않게 살아가자는 내용을 담았다. 작곡은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노래도 마찬가지다.”
-1995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몇 차례 한국을 찾았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자면.
“음... 지난해 기내 난동 사건? 그걸 이길 일이 있겠나. 내게 특별한 경험이었다(웃음). 10월 공연에서도 ‘나우 앤 포에버’를 부를 거다. 한국 관객들이 다 따라 불러줄 것을 상상하면 정말 설렌다. 난 노래를 멈출 생각이 없다. 더 큰 성공을 쫓지 않으면서 내 인생을 즐기고 싶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김도엽 인턴기자(경희대 정치외교학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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