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전면 개방한지 한달
불볕 더위, 퍼붓는 폭우에도
“여기가 마지막 희망이란 생각”
1인 시위 하루 20여명 ‘출근’
농성천막 설치 놓고 옥신각신
주민들 “일상 피해” 민원 제기
김용태(56)씨는 오전 9시면 어김없이 청와대 분수대 앞으로 출근한다. 시간당 50㎜ 폭우가 쏟아지던 23일에도 김씨는 우산과 긴 막대기를 이어 만든 현수막걸이를 펴곤 분수대 앞에 꼿꼿이 섰다. 현수막에는 모 주류회사의 갑질을 고발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2005년 천안에서 생수 생산업체를 운영한 그는 2006년 주류회사가 원가보다 싼 가격으로 생수를 공급하면서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었다고 했다. “극단적 선택을 했는데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는 그는 주류회사를 상대로 한 싸움을 12년째 이어오고 있다. 그는 “이제는 대통령에게 호소하는 방법뿐이라 내 이야기를 들어 줄 때까지 매일 청와대 앞에 나올 것”이라고 했다.
24시간 전면 개방(6월 26일)한 지 한 달, 청와대 앞이 ‘시위 메카’로 변모하고 있다. 저마다 피켓이나 현수막을 들고 억울한 사연을 호소하는 시민들 모습을 청와대 앞 분수대 쪽 여기저기서 쉽게 볼 수 있다. 청와대 외곽 경비를 담당하는 202경비단 관계자는 “개방 전에는 거의 없었던 1인 시위가 매일 20건 가까이 되고, 비정기적인 것까지 하면 40건은 족히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토요일인 22일에도 20명 가까운 1인 시위자가 청와대 분수대 앞 자리를 차지했다. 사이비 종교에 빠진 딸을 구해달라는 한 엄마부터 사드 배치 반대 활동가까지, 개인 민원과 사회ㆍ정치적 구호가 경쟁하듯 뒤섞여 있었다. 지방 C시청의 막무가내 행정을 고발하기 위해 매일 이곳을 찾고 있다는 조명자(55)씨는 “여기 모인 사람들 모두 대통령이 마지막 희망인 사람들”이라고 했다. 낮 기온이 35도를 넘나든 21일 오후 1시에 이곳을 찾은 유경근(48) 4‧16 세월호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이렇게 더울 때 서 있어야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관심 가지지 않을까”라고 했다. 그는 ‘해양수산부는 세월호를 국민에게 공개하라’는 내용이 담긴 피켓을 들고, 하루 중 제일 덥다는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서있었다.
광화문 근처에서나 보던 농성천막 때문에 다툼이 일기도 했다.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겠다는 이들과 이를 막으려는 경찰간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경찰은 분수대 앞에서는 1인 시위를 최대한 보장하고는 있지만, 청와대 100m 거리 안에서는 기자회견 등 집회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지난달 청와대에서 100m 떨어진 ‘사랑채’ 부근에 천막을 치면서, ‘인도에 설치한 불법천막’이라는 구청과 옥신각신 철거와 설치를 반복하는 일이 벌어졌다. 지금은 민주노총이 설치한 그늘막에 대해 구청은 철거를 요구하는 계고장을 보내고, 민주노총은 버티는 싸움으로 전개되는 상황이다.
시민들 반응은 엇갈린다. 청와대 인근인 청운효자동 주민들은 20일 "새 정부 출범 후 반복되는 집회 시위에 도저히 못 살겠다"며 경찰에 민원을 접수하기도 했다. 청와대 쪽으로 시위자들이 밀려드는 통에 일상 생활에 피해를 보고 있다는 하소연이다. 반면 “이렇게라도 민의(民意)는 표출돼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23일 분수대 앞을 지나가던 박모(65)씨는 “오죽하면 청와대 앞까지 와서 하루 종일 서 있겠냐”고 말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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