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요’에 등장하는 아리따운 선화공주의 묘가 맞을까. 백제 시절 조성된 전북 익산의 고분 쌍릉(雙陵)의 주인을 규명하기 위한 발굴조사가 이뤄진다.
문화재청은 8월부터 원광대 마한ㆍ백제문화연구소가 쌍릉 중 하나인 대왕묘를 발굴한다고23일 밝혔다. 1917년 일본 고고학자 야쓰이 세이이치의 조사 이래 100년만의 일이다.
쌍릉은 이름 그대로 두 개의 큰 무덤을 말한다. 하나는 지름 30m, 높이 5m 규모의 대왕묘이고, 다른 하나는 지름 24m, 높이 3.5m의 소왕묘다. 겉은 흙을 둥그렇게 쌓아 올린 원형 봉토분이고, 내부는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이다. 전형적인 백제후기 왕릉 형태를 띄고 있어 고고학계는 부여에서 사비로 수도를 옮긴 뒤 조성된 왕릉 가운데 하나일 것으로 본다. 이 때문에 쌍릉을 두고 사비로 수도를 옮긴 무왕(재위 600~641)과 그 부인인 선화공주의 묘라는 해석이 나왔다. 나란히 조성된 두 능은 국경과 신분 차이를 뛰어넘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에는 잘 어울리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쌍릉에 대한 이런 해석이 최근 들어 흔들리고 있다. 익산 미륵사지 발굴 때 절 조성 경위를 담은 금제사리봉안기가 나왔는데, 여기엔 무왕의 부인을 후기 백제의 대표적 귀족가문인 ‘사택적덕’의 딸이라 해뒀고, 이 딸의 기부 덕에 절이 지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제껏 미륵사는 무왕과 선화공주가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 발굴 이후 무왕의 부인이 선화공주인가 사택왕후인가, 선화공주가 실존인물일 가능성이 있는가를 두고 한차례 논란이 벌어졌다.
여기에다 국립전주박물관은 기존 쌍릉 발굴 때 나온 유물을 분석한 결과 치아 4점이 비교적 젊은 여성의 것으로 추정되고, 부장품은 7세기 신라의 토기와 비슷하다는 결과를 내놨다. 이러면 무왕과 선화공주의 이야기가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이런 유물들이 발굴된 곳은 소왕묘가 아니라 대왕묘였다. 이런 유물에 대한 연구결과와는 별도로 일각에서는 당시 격렬한 충돌을 빚고 있었던 당시 백제-신라간 관계를 감안한다면, 선화공주 스토리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문화재청의 이번 발굴조사 결정은 무덤 주인을 둘러싼 이런 논란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다만 이번 발굴조사가 얼마만큼이나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1917년 쌍릉을 조사했던 야쓰이 세이이치는 이미 그 당시에 극심한 도굴로 인해 발굴할 만한, 제대로 된 유물이 없다는 기록을 남겨둔 바 있다. 문화재청은 이런 도굴 가능성 때문에 야쓰이 세이이치가 제대로 된 발굴작업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이번 기회에 정교하게 유물 발굴 작업을 진행하고, 무덤 조성 기법도 정확히 확인해볼 방침이다.
최문선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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