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건강보험 하나로 의료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월말에 문 대통령이 직접 구체적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기대가 크지만 다른 한편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까 걱정도 많다.
지난 15년간 역대 정부가 건강보험보장성을 높여 의료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여전히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개인이 의료비를 가장 많이 부담하는 나라이고, 의료비 때문에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가구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이다. OECD 국가는 의료비 중 80% 이상을 건강보험이나 국가가 책임지지만,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64% 밖에 부담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매년 약 44만 가구가 의료비 때문에 상대적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보장성 강화 정책이 실패한 이유는 이른바 ‘비급여 풍선효과’를 근절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래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던 초음파나 비싼 항암제에 대해 보험 혜택을 확대하면 병원이 그보다 더 비싼 새로운 비급여를 늘려나가는 것을 말한다. 병원이 부도덕해서가 아니라 건강보험이 진료비를 낮게 책정해서 생기는 손해를 벌충하려면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결국 국민 의료비 부담은 크게 줄어들지 않았고 의료비 때문에 곤란을 겪는 국민은 오히려 더 늘어났다. 암과 심장병 같은 이른바 4대 중증질환에서는 보장성이 OECD 국가 수준으로 개선되었지만, 전체적으로 지난 정부의 보장성 강화정책이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런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비급여 풍선효과’를 근원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새 정부는 정책방향을 옳게 잡았다. 원래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던 모든 의료행위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앞으로 개발될 신기술도 예외 없이 모두 건강보험을 적용해 비급여를 아예 없애기로 한 것이다. 병원에서 비급여 진료가 완전히 사라지면 새로운 비급여가 생겨나기 어렵게 된다. 계획대로라면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초음파와 MRI처럼 건강보험이 일부만 적용되던 비싼 검사을 해도, 일년 약값만 1억 원이 넘는 고가 항암제를 써도, 상급병실에 입원해도 모두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물론 미용 성형이나 특실과 같은 호화서비스는 예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새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이 성공하려면 병원이 비급여 진료를 할 수 밖에 없는 현 의료제도의 구조적 모순을 함께 해결해야 한다. 우선 건강보험 진료비를 적정 수준으로 높여서 병원이 비급여 진료를 하지 않아도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해야 한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는 의료계의 숙원인 적정부담-적정수가 체계로 나아가는 전기가 될 수 있다. 이와 함께 환자진료에 대한 지나친 규제와 무리한 진료비 삭감, 일방적인 정책 추진과 같은 관료적인 의료제도 운영에서 벗어나야 한다. 환자에게 의학적으로 필요한 진료를 하면서 심평원의 진료비 삭감을 피하기 위해 의사가 비급여 진료를 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지난 정부가 실패한 또 다른 이유는 비급여 진료가 우리나라의 잘못된 의료제도에서 기인한 구조적 문제라는 점을 간과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동시에 돈을 벌기 위해 치료효과가 없는 비급여 진료를 남발하는 부도덕한 병원을 근절해야 한다. 부도덕한 과잉진료는 건강보험 재정을 낭비할 뿐만 아니라 부작용이나 합병증을 낳아 오히려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의료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어야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보장할 수 있다.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으면 공부를 할 수도 일을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의료비 걱정 없는 대한민국’이라는 미완의 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정부로 역사에 기억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김윤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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