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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유럽ㆍ대서양 통합의 이면

입력
2017.07.23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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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유럽연합(EU)과 유럽을 동일시하지만 둘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역사적으로 EU는 수세기에 걸친 전쟁과 회원국 사이의 폭력적 갈등을 종식시키는 데 기여했다. 지금 유럽이 1945년 이전과 정반대 모습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지리적 측면에서 유럽은 EU의 계속된 확장으로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 긴밀하게 전면적으로 커지고 있다.

그러나 영국의 EU 탈퇴로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근본적 문제를 알게 되었다. EU의 확대 추세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아니며, 정치체제로서 EU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없고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EU와 그 이전 유럽공동체의 궤적에는 두 가지 역학이 작용했다. 유럽 통합이 강화되는 한편에서 통합의 이점으로 회원국 숫자가 늘어났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로 더 많은 기회와 도전이 생겨났다. 공산주의가 붕괴되면서 얄타회담으로 분열된 유럽은 사라졌다. 그리고 EU 확대는 더 이상 서방 국가에 한정되지 않았다. 동서 유럽 통합이라는 어려운 일을 해낸 최초의 조직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였다. 체코 헝가리 폴란드가 정회원이 되기 2년 전인 1997년 회원국들은 충돌을 완화하기 위해 러시아와 협정을 맺었다. 이 협정으로 비로소 냉전이 끝났다. 체코 등 세 나라는 2004년 다른 7개국과 함께 EU에 가입했다. 유럽 대륙 및 세계적인 규모에서 결속력이 강화된 EU가 유럽의 전통적 영향력을 대체하는 것처럼 보였다.

알티에로 스피넬리가 1940년대 초에 지적한 대러 유럽통합운동은 “국가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그것들이 자유롭게 드러나는 길을 제공할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소비에트 지배를 받던 나라들에게 EU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보장 받고 국가적 포부를 실현하는 길을 의미했다. 당시 유럽 통합은 사실상 주권 상실을 수반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치가 있었다. 반대로 EU는 회원국들이 국제적 영향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사회경제적으로 큰 이점을 제공했다.

철의 장막이 사라진 후, 영국과 통일독일은 동유럽으로 EU를 확대하는 주요한 동력이었다. 영국 보수당은 그것을 더 긴밀한 유럽 통합을 늦추는 수단으로 보았지만 콜 독일 총리는 두 힘이 양립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1세기가 될 때까지도 그랬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2004년 ‘EU 빅뱅’ 이후 1년 만에 치러진 네 차례의 EU 헌법안 국민투표에서 두 번은 그 양립 가능성을 의심케 했다. 특히 프랑스에서 ‘폴란드 배관공’이 지역 주민의 일자리를 빼앗을 수 있다는, 그릇되고 경멸적임에도 불구하고 반향은 상당한, 인식이 번졌다. 프랑스와 네덜란드는 이 야심 찬 헌법 프로젝트를 거부했다. 이런 좌절로 EU는 다소 방향을 상실했다. 리스본 조약 체결은 대증요법에 불과한 것이었다.

역설적이게도 ‘폴란드 배관공’이라는 수사는 10여 년 뒤 브렉시트 국민투표 과정에서 다시 등장했다. EU 확대를 뒷받침하던 바로 그 영국에서 중ㆍ동유럽 노동자들을 EU 탈퇴를 위한 선거의 희생양으로 이용한 것이다.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몽유병 시나리오’라고 부른 그대로 영국은 EU를 버리기로 결정했다. 과연 무엇이 위태로운지 진정하고 충분한 논의도 없이 말이다.

중유럽과 동유럽에도 많은 역설이 있다. 폴란드를 보자. 독일과 화해한 덕분에 폴란드는 유럽ㆍ대서양 공동체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게 되었다. 프랑스ㆍ독일 축을 ‘바이마르 트라이앵글’로 바꾼 것이다. 새로운 지정학적 자리매김으로 폴란드가 얻은 이익은 인상적이었다. 공산주의 붕괴 이후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간 우크라이나 같은 나라들과 거시경제 수치를 비교해 보면 그런 인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1990년 우크라이나의 1인당 GDP는 폴란드보다 높았다. 그러나 지난해 폴란드의 1인당 GDP는 우크라이나의 거의 4배나 됐다.

그런데도 폴란드 정부는 지금 유럽의 약점을 이용해 이득을 보려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근 방문을 EU를 쪼개고 외부 간섭 없이 자국의 민주적 제도들을 없애는 방편으로 이용하고 있다. 폴란드에서는 지금 이민 반대의 목소리가 넘쳐난다. 오랫동안 그럭저럭 이 나라를 비켜갔던 국경에 대한 향수가 커져가고 있다. 폴란드 집권당은 영국과 다른 나라에서 폴란드계 이민자들이 적대감의 원천이라는 아이러니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폴란드 정부는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의 방식을 따라 정말 EU 내에서 비자유주의 국가를 만들어 가고 있다.

EU 모델은 존중해야 하는 일련의 기본적 약속을 바탕으로 한다. 이런 약속들이야말로 과거 소비에트 블록 국가들이 EU 회원국이 되는 데 관심을 갖게 한 요인이었다. 정치사회적으로 발전하더라도 문제점이 전혀 없을 순 없고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에도 좋은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EU는 두 세력에 대항하면서 오늘날 유럽 사회의 과제에 부응하는 활력적인 서사를 만들어내야만 합법성과 추진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유럽의 미래가 달렸다.

하비에르 솔라나 전 EU 외교안보정책 고위 대표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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