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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업] '박복자' 김선아의 숨은 연기 내공 4

입력
2017.07.22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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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아는 JTBC 금토극 ‘품위있는 그녀’에서 박복자 역을 연기하고 있다. JTBC 제공

이토록 강렬할 수 있을까. 전과자와 간병인을 거쳐 재벌기업의 사모님으로 신분 세탁을 한 박복자 말이다. 배우 김선아(42)는 JTBC 금토극 '품위있는 그녀'에서 개성이 뚜렷한 역할로 또 한 번 화제의 중심에 섰다.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2005)의 김삼순 이후 12년 만이다.

시청률부터 춤을 췄다. 2%로 시작한 '품위있는 그녀'는 지난 21일 11회 방송에서 8%를 넘겼다. 김선아의 연기 내공이 한 몫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의 신분을 철저하게 숨긴 박복자는 재벌 회장의 마음을 얻으려 유혹도 마다하지 않는다. 뽀글거리는 퍼머 머리에 충청도 사투리로 촌스러운 모습을 보이다가 똑 부러지는 표준어를 구사하는 미스터리 한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첫 회에선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채 발견돼 드라마의 긴장감을 불어넣는 역할도 했다.

'낯선 여자에게서 내 남자의 향기를 느꼈다'는 화장품 광고로 연예계의 이목을 끌며 데뷔한 김선아. 어느 덧 데뷔 20주년을 맞은 그는 다양한 작품에서 변신을 꾀했다. 거듭된 변신은 김선아에게 성숙한 연기 내공을 선물했다. 로맨틱코미디, 스릴러, 액션, 코미디 등 장르를 넘나드는 몇 안 되는 배우가 됐다. 김선아의 연기 내공이 돋보인 작품들을 꼽아봤다.

영화 ‘잠복근무’에서 고난도 액션을 선보이는 김선아. 한국일보 자료사진

액션- '잠복근무'(2005)

강력계 형사가 교복을 입는다. 천재인(김선아)은 조직폭력배 부두목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그의 딸 차승희(남상미)의 학교에 위장 잠입하는 임무를 맡는다. 하지만 별 수 있나. 일은 일인 법. 재인은 승희와 친해지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지만, '얼음공주' 승희는 재인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재인을 맞아주는 건 이 학교의 '일진'들 뿐이다. 사사건건 재인에게 트집을 잡으며 싸움을 거는 일진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참아야만 한다. 그나마 재인에게 힘이 되는 건 '꽃미남' 강노영(공유)이다. 오로지 그를 보는 낙으로 학교로 출동하는 것.

김선아(오른쪽)는 영화 ‘잠복근무’에서 공유와 호흡을 맞췄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여기까지만 들으면 별 것 없는 코미디 영화로 보인다. 그러나 김선아는 이 영화에서 날고 뛰고 싸우며 강한 형사의 면모를 드러낸다. 특히 수많은 조폭들을 상대로 펼치는 맨손 액션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맨 주먹은 기본이고 상대를 제압하는 무술은 여전사 그 자체다. 얼굴과 몸매를 부각하는데 신경 쓰느라 어설픈 액션을 선보이는 여느 여배우들과는 달랐다. 화장기 없는 얼굴로 머리카락을 질끈 동여맨 채 발차기를 시도하는 김선아의 도전이 아름다운 영화다. 지금은 톱스타 반열에 오른 하정우와 공유의 신인시절 모습을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이범수(왼쪽)와 김선아는 영화 ‘몽정기’에서 선생님과 교생으로 출연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코믹- '몽정기'(2002)

영화는 중학교 2학년 학급에 배정받은 교생 김유리를 통해 그 시기 남학생들의 성적 호기심을 코믹한 터치로 그려낸다. 동현(노형욱), 석구(전재형), 상민(정대훈), 영재(안재홍) 등 네 명의 악동이 그리는 유리에 대한 '관심병'은 폭소를 자아낸다. 남자 관객들에겐 학생시절 추억을 소환해 낼 만한 영화다.

그간 중성적인 매력을 어필했던 김선아는 이 영화에서 순수한 교생으로 등장해 또 한 번 연기변신을 시도했다. 의상부터 남다르다. 꽃무늬 스커트에 새하얀 카디건을 입고는 청순미를 강조했다. 사춘기의 남학생이라면 한 번쯤 흠모했을 교생 선생님의 전형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남학생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한 설정이다. 여기에 첫사랑 노총각 선생님을 잊지 못해 교생이 된 사연도 순수한 매력을 드러낸다. 옛 스승이자 배정된 반의 담임인 공병철(이범수) 선생님을 향한 유리의 귀여운 애정공세도 볼거리다.

순수한 이미지만 어필했다면 김선아가 아니다. 그는 남학생들의 짓궂은 상상 장면에 등장하는 아찔한 연기도 선보였다. 가죽옷을 입고 채찍을 휘두르는 건 기본이고 베드신과 노출신도 있다. 다만, 뒷태를 노출하거나 가슴선이 드러나는 장면은 모두 대역이다.

김선아는 영화 ‘더 파이브’에서 하반신 불구의 몸으로 연쇄살인마에게 복수하는 은아를 연기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스릴러- '더 파이브'(2011)

그야말로 파격 변신이다. 김선아는 지옥보다 더한 끔찍한 상황에 놓인 한 여인의 기구한 운명을 연기했다. ‘김선아의 재발견'이라는 말이 나온 영화.

연쇄살인마에 처참하게 짓밟힌 것도 모자라 눈 앞에서 남편과 딸이 살해 당하는 과정을 보게 된 은아(김선아)가 그 주인공이다. 더군다나 은아는 불구의 몸으로 휠체어에 의존한 채 살아가는 가엾은 여자다. 그러나 혼자의 힘으론 복수가 불가능한 은아는 대호(마동석), 남철(신정근), 철민(정인기), 정하(이청아) 등 4명의 가담자들을 모아 잔혹한 계획을 설계한다. 이들 역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은아의 복수극에 가담한다. 영화는 자신을 희생시켜서라도 복수를 다짐하는 이들 5명의 아픈 사연까지 더해져 보는 내내 가슴이 아프다.

김선아는 영화 ‘더 파이브’ 속 은아를 연기하기 위해 3개월 간 휠체어에서 생활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뭐니뭐니해도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김선아의 연기다. 잔혹 스릴러답게 여주인공의 활약이 영화의 8할을 차지하니 말이다. 김선아는 "휠체어에서 3개월 넘게 생활한 게 가장 힘들었다"며 "건강하지 않았다면 촬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혹독했던 촬영 당시를 떠올렸다. 그렇다고 캐릭터의 디테일한 부분을 놓칠 수 없었다. 강인한 인상을 위해 헤어스타일에도 힘을 줬다. 마치 스스로 머리를 자른 듯한 거친 머릿결은 무려 5번의 퍼머로 만든 결과물. 연기 욕심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밝고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버린 김선아의 연기가 호평을 받은 이유다.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통해 ‘삼순이 열풍’을 이끌었던 김선아(오른쪽)와 현빈. MBC 제공

로맨스- '내 이름은 김삼순'(2005)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대한민국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김삼순으로 변신해 '로코퀸'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무려 시청률 50%를 찍으며 2005년 그해 가장 뜨거운 화제가 된 작품이다. 30대 여주인공, 연상연하 커플, 계약연애 등 기존의 로맨틱코미디를 탈피한 주인공들을 내세운 점도 주목 받았다.

그 속에서 김선아의 연기는 빛을 발산했다. 그는 화려함 대신 통바지에 면 티셔츠를 입은 김삼순을 창조했다. 이 자체가 '삼순이 신드롬'을 만들었다. 날씬하지도 예쁘지도 않은 외모에 욕설도 거침없이 내뱉던 캐릭터가 김삼순이다. 내숭이나 애교도 없다. 시커먼 마스카라 눈물을 뚝뚝 흘리거나 밥 먹고 바로 누워 잠이 들고, 엄마에게 빗자루로 맞기까지 했다. 현실적이어서 더 사랑 받은 김삼순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노력은 남달랐다. 파티시에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신데렐라 스토리의 전형적인 로맨틱코미디 장르를 뛰어넘어 사회적 열풍을 이끌어 냈다. '캔디형' '민폐 여주' 등 로맨틱코미디 속 여자 주인공의 인식을 완전히 바꿔버린 계기가 됐다.

만약 김선아가 아닌 다른 여배우가 김삼순을 연기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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