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는 훌륭한 나라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리 유쾌한 인상을 갖고 있지 않다. 1990년대 초 처음 방문했다. 모든 게 깨끗하고 질서정연하다는 느낌을 줬다. 밤은 아늑했으며, 음식은 정갈하고 맛있었다. 동남아 적도 주변국에서 흔히 느껴지는 혼돈스러운 습기나 열기 대신, 쾌적하게 잘 꾸며진 5성급 호텔 로비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감쪽같은 ‘매끄러움’이 심술궂은 거부감을 자극했는지 모른다. 시선이 마침내 지하철에 나붙은 벌금 경고문에 이르자 짜증이 치밀었다.
▦ 싱가포르는 ‘벌금의 나라’이기도 하다. 지하철 경고문만 봐도 숨이 막힐 지경이다. 담배 피우면 1,000 싱가포르달러(약 82만원), 비상벨을 잘못 누르면 5,000달러, 차량 안에서 음식이나 음료를 먹어도 500달러, 하는 식이다. 안전, 또는 질서 위반에 대한 폭넓고 엄정한 징벌 시스템이 오늘날 선진 싱가포르를 일군 힘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싱가포르의 그런 면이 탐탁지 않았다. 왠지 일상적 행동 하나하나까지 통제를 받아야 하는 무식한 대중으로 전락한 듯한 불쾌감을 줬다.
▦ 비슷한 맥락에서 애초부터 ‘김영란법’이 꺼림칙했다. 부패의 심각성을 일부 감안해도 그랬다. 무엇보다 행동양식을 스스로의 모럴에 의하지 않고 낮은 차원의 법과 규정에 의해 통제 받는 일을 우리 국민 다수가 그토록 열정적으로 서둘러 환영했다는 사실이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김영란법에 관한 납득하기 어려운 점은 비단 입법 자체에 그치지 않는다. 관련 규정을 마치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태도 역시 공감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 대표적인 게 ‘3ㆍ5ㆍ10’ 규정이다. 공무원 등이 주고받을 수 있는 음식물ㆍ선물ㆍ경조사비의 허용 기준액을 각각 3ㆍ5ㆍ10만원으로 정한 것이다. 그동안 이 기준에 대한 비판이 줄을 이었다. 기껏해야 ‘지나치지 않은’ 부조(扶助)에 대한 통념과 기존 공직자윤리강령 등을 토대로 ‘단순하게’ 정해진 이 기준을 바꿔야 한다는 게 골자였다. 일례로 금고에 쌓일 경조사비를 대폭 낮추고, 대신 시중에 풀려 경기활성화에 도움이 될 식사비를 차라리 높이자는 식이었다. 권익위는 그때마다 신성모독이라도 당한 것처럼 펄쩍 뛰곤 했다. 정부가 최근 이 기준을 손 보기로 방침을 정했다는 소식이다. 어른스러운 결론을 내기 바란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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