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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테이에서 온 편지] 책으로 밤 밝히는 아이들

입력
2017.07.2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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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해리에 날아든 ‘부엉이들’. 뒹굴뒹굴 책 읽고 얘기 나누는 '부엉이와보름달작은축제' 참가자들이다. 7월엔 권정생 선생의 '강아지똥'을 그린 정승각 작가와 함께 했다.
책마을 해리에 날아든 ‘부엉이들’. 뒹굴뒹굴 책 읽고 얘기 나누는 '부엉이와보름달작은축제' 참가자들이다. 7월엔 권정생 선생의 '강아지똥'을 그린 정승각 작가와 함께 했다.

세상 모든 격정(激情)은 여름에 있을까? 비 있고 없음의 사이가 이렇게 극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스팔트 포장 같은 완충 없이 그냥 맨 땅에 깃들어 사는 농(農)의 것들이 그렇다. 농업이 시작된 이래 수수천년 하늘 처분만 바라보며 살아온 사람과 사람 곁의 것들. 올해처럼 타는 가뭄과 붓는 장마 사이, 엎치락뒤치락도 차마 이렇게 격정적일 수가 없다. 그 엎뒤치락 사이에 책마을해리도 놓였다. 사방 둘러싼 들녘을 바짝바짝 태우며 다가오는 가뭄과 천지를 흔들며 퍼붓는 폭우, 그 이 편 저 편을 견디며 초록은 무척이나 깊어있다.

밤늦도록 책읽는 부엉이들을 찾아온 정승각 작가

하지 지나고 해가 하루 한 뼘씩 줄어드는 여름 저녁, 장맛비가 잠시 멈춘 사이를 바람이 채운다. 책농사로 분주한 책마을해리엔 매달 보름 가까운 주말, 늦도록 책이나 실컷 보자는, 책 이야기나 싫도록 나누자는 '부엉이와보름달작은축제'가 열린다. 이 작은 축제는 소소한 노래공연으로 문을 열곤 했다. 노래하는 친구들이 품을 보태준 덕분이다.

올해는 결을 좀 달리 한다. 노래 사이사이 우리나라 그림책작가와 만나는 시간을 마련했다. 그새 권윤덕, 조혜란, 양상용 작가가 책마을 부엉이가 되었다. 7월 차례는 정승각 선생이다. 정 작가를 그림책과 만나게 해준 것이 ‘까막나라에서 온 삽살이’라는 책이다. 이어 권정생 선생의 글을 그림으로 옮겨 지은 명작 ‘강아지똥’, ‘오소리네집꽃밭’, ‘황소아저씨’ 같은 책에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책마을 부엉이들과 만난 ‘춘희는 아기란다’까지.

춘희는 아기란다

변기자 지음ㆍ박종진 옮김ㆍ정승각 그림

사계절 발행ㆍ40쪽ㆍ1만3,000원

밭매다 딴짓거리

책마을해리 지음

나무늘보 발행ㆍ168쪽ㆍ1만6,000원

정 작가는 부엉이보름달 친구들에게 ‘그림책과 만난 두 개의 문’에 대해 들려주었다. 한 개의 문은 어린이들과 그림에 대한 다양한 접근, ‘오감 살린 그림놀이’며 1988년부터 한 20년 어린이 공동벽화를 아트디렉터로 진행하며 경험한 세계다. 다른 한 개의 문은 선생이 걸어온 그림책작가의 길이다. 전통과 현대라는 화두를 그림의 형식과 이야기에서 실험하며 하나의 세계를 이룩한 그 길이다.

대전에서 몇 가족이 동무삼아, 서울에서, 파주에서, 공주에서, 익산에서, 광주에서, 고창 여러 곳에서 참가한 부엉이들이 ‘춘희는 아기란다’와 선생이 살아온 길에서 마주한 질문거리들을 던진다.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된 남편을 찾아갔다 원폭으로 남편을 잃고 ‘뱃속에 있을 때 원자폭탄을 맞’고 태어나 마흔세 살이 되도록 아직 아기였던 춘희 이야기. 어린 부엉이들은 우리와 일본 관계부터가 궁금하다. 참, 이 책은 한중일 세 나라가 함께 진행하고 있는 평화그림책 열한 번째 책이기도 하다.

두 시간을 훌쩍 넘긴 기나긴 대화 끝에 잠깐 숨 고르며 특별한 출판기념회를 갖기도 했다. 2016년 1년간 책마을 마을학교 ‘밭매다 딴짓거리’에서 할머니들이 좌충우돌 읽기와 쓰기를 기록한 책 ‘밭매다 딴짓거리’ 출판을 기념하는 자리다. 가물 때는 가물어서, 장마 때는 장마라서, 한 시도 쉴 수 없는 마을 할머니들 얼굴에 모처럼 함박웃음이 걸렸다. 벌써 세 번째 책의 저자가 되는 순간이다.

시집을 출간한 할머니들. 농사일로 바쁜 할머니들이 말 그대로 '밭매다 딴짓거리'한 결과다.
시집을 출간한 할머니들. 농사일로 바쁜 할머니들이 말 그대로 '밭매다 딴짓거리'한 결과다.

‘망할 놈의 개’ 밭매다 딴짓거리 할머니가 지은 시

‘옥수수 튀기러 해리 시장 가서/ 뻥튀기 집 옆에 있던 개가/ 갑자기 나와 다리를 물었어/ 욕할 틈도 없이 너무 아프게 물렸지/ 느닷없이 피는 줄줄 나고/ 병원 갔더니 소독하고 붕대도 감아주었다/ 다리를 펴지도 못하고 접지도 못하게 아프다.’ 책에 실린 이기님 할머니의 시, 제목은 ‘망할 놈의 개’다.

할머니들과 난생 세 번째 출판기념회도, 정승각 선생의 그림책 이야기도 차근차근 끝나고, 책마을 아무데서나 책 읽기도 마치고, 엄마 아빠부엉이, 꼬마부엉이들이 다시 모였다. 책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다. 그림책부터 동화, 소설에 이르는 책과 살아온 이야기가 봇물처럼 터져 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7월도 중순으로 접어드는 책마을해리, 이제 슬슬 마법의 문이 열리는 때다. 해리포터 마법학교처럼 말이다. 방학, 배움은 잠시 놓고 놀며 읽고 쓰는 책마을의 문이 활짝 열리기 때문이다. 당장 ‘청소년동학캠프’가 열린다. 19세기를 동학의 바탕에서 살았던 고창의 역사를 되짚는 의미심장 역사캠프다. 고창군과 함께 진행하며 과정을 기록해 청소년동학신문을 만들게 된다.

또 하나의 문은, 문화체육관광부ㆍ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ㆍ책마을해리가 함께 진행하는 ‘2017 청소년인문독서예술캠프’다. 시인학교, 만화학교, 생태학교, 서평학교, 그림책학교가 ‘누구나 책, 읽고 하고 쓰고 펴내는’이라는 부제를 달고 슬슬 채비를 마치고 있다. 물론 다섯 학교를 마치면 올 가을엔 다섯 권의 책이 세상과 만난다. 이것이 일상과 마법을 연결하는 고리다.

고창 책마을해리 이대건 촌장ㆍ북스테이네트워크(bookstaynetwo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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