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들어 당과 국정기획자문위원회를 넘나 들며 맹활약하는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야당 공격의 선봉에 본격 나서기 시작했다. 그간 협치를 위해 자세를 낮추던 원내지도부와 달리 선제적인 공세로 야당의 예봉을 꺾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김태년 정책위의장은 20일 추가경정예산의 공공부문 일자리 증액을 반대하는 야3당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이날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우원식 원내대표에 이어 마이크를 이어 받은 김 정책위의장은 “용어 하나 어휘 하나 트집 잡아가지고 삐지거나 삐진 척하는 그런 정치가 생겨서 많이 조심해 보겠다”고 분위기를 잡은 뒤 본격적인 포문을 열었다.
김 정책위의장은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를 첫 타깃으로 삼았다. 그는 “(김동철 원내대표는) 저하고는 평소 호형호제하면서 친하게 지내는데 정치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다”라고 경고하면서 “저와 이번 과정에서도 몇 차례 통화를 통해 ‘추경에 담는 것은 좀 거북하니 작년에 예비비 편성한 것을 써도 좋다’고 얘기한 바 있지 않느냐. 이제 와서 막으면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고 그간의 비공개 접촉 내용을 공개했다. 여야 간 특정 현안에 대한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비공개 대화를 공개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는 점에서 김 정책위의장이 작심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김 정책위의장은 보수야당을 향해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예산안 통과 후 ‘공시생(공무원 수험생) 내년에는 1만명 더 합격’이라고 적힌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플래카드 사진을 소개하며 “공시생 1만명을 확대할 것처럼 플래카드를 만들어 동네방네 붙여 놓고 이제 와서 ‘공무원 공화국’ 만드는 것처럼 공격하면 안 된다”며 “새누리당 후신이 한국당과 바른정당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정책위의장은 “다시 한 번 점잖게 말한다. 지금 와서 트집 잡거나 딴소리 말고 협조해 달라고 간곡하게 그러나 점잖게 호소한다”며 경고성 호소로 마무리했다. 그러자 회의에 참석했던 의원들 사이에서는 “너무 점잖았다” “잘했다” 는 얘기들이 터져 나왔다. 김 정책위의장이 회의장에서 목소리를 높이자 그간 협치 차원에서 움츠리고 있던 의원들도 동요하는 분위기가 감지된 것이다.
당 내부에서는 친문 핵심이자 강성인 김 정책위의장의 이날 발언이 사실상 야당을 향한 선전포고나 다름 없다는 평가가 나왔다. 야당의 반대에 더 이상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국정기획위에서도 공무원들에게 끌려 다니지 않고 나름 중심을 잡으며 국정과제를 마무리한 데는 김 정책위의장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며 “국정기획위 활동이 종료된 만큼 이제 김 정책위의장이 당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하지만 여소야대 정국에서 김 정책위의장의 강경 모드가 어디까지 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보수 야당의 한 관계자는 “운영의 묘가 필요한 4당 체제에서 김 정책위의장이 계속해 강경 일변도로 나오면 야3당의 공조체제는 더욱 힘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직접적인 협상 파트너인 원내대표가 당근을 제시한다면 한 발 떨어져 있는 정책위의장이 채찍 역할을 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얘기가 나왔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