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6.4% 파격 인상, '2020 1만원' 시동
보수진영 "선의로 포장된 지옥 길" 반발
논란보다 결정 뜻 새겨 새 균형점 찾아야
솔직히 깜짝 놀랐다. 휴일 아침 습관처럼 TV 시사프로에 채널이 멈췄는데, 좌측 상단 소제목이 '최저임금 16.4% 인상' 아닌가. 눈을 의심했고 출연자들의 얘기를 들으며 귀를 의심했다. 마감 시간에 쫓긴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가 끝장 협상 끝에 도출한 인상률이 마지노선으로 생각했던 15.7%도 아니고 무려 1,060원 오른 16.4%라니, 그것도 노사 및 공익위원 27명 모두 참여한 표결의 결과라니…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2020년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려면 올해 6,470원인 최저임금을 내년부터 3년간 연 평균 15.7%씩 올려야 하고 첫 단추를 잘 꿰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이렇게까지….
그럼 최저임금 근로자의 82%가 근무하는 30인 미만 영세사업장이나, 연 매출 4,600만원 미만에 월 소득이 200만원도 안 되는 52%의 자영업자(중소기업청 자료)가 안게 될 부담은 어떻게 되는가. 중소기업의 42%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고 소상공인의 72%의 월 이익이 100만원을 밑돈다는 조사(중소기업중앙회)도 있다. 최저임금 문제는 갑을의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을을의 동병상련 갈등이고, 우산장수와 나막신 장수를 두 아들로 둔 부모의 심정으로 접근해야 할 사안이 아닌가. 문 정부의 체면과 명분, 사업장의 현실을 두루 감안한 절충점은 10% 남짓의 두 자릿수 인상과 천 자릿수를 바꾸는 7,000원대 초반이 될 것으로 모두가 예상한 것은 그래서다.
여기저기 찾아보니 결정 과정은 노사 수 싸움과 공익위원의 압박성 중재가 만든 한 편의 드라마였다. 6월 초부터 12차례 진행된 최임위 초반에 노동계는 54.6% 인상한 1만원을, 사용자 측은 2.4% 올린 6,625원을 제시했다. 1차 수정안은 노동계 9,570원(47.9%), 사용자 6,670원(3.1%). 여기까지는 피차 말이 되지 않는 줄 알면서 상대 떠보기용으로 내놓은 것이었다. 15일 다시 내놓은 2차 수정안에선 노동계 8,330원(28.7%), 사용자 측 6,740원(4.2%)으로, 차이는 1,590원으로 좁혀졌으나 여전히 거리는 멀었다. 이 지점에서 어수봉 위원장은 "올해는 공익위원 조정안 없이 노사 양쪽의 최종안을 놓고 표결하겠다"고 강수를 던졌다.
졸지에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 처한 양쪽은 고심을 거듭했다. 사용자 측은 노동친화적인 정부의 공익위원 성향을 의식했을 것이고, 노동계는 과욕에 따른 역풍을 떠올렸을 것이다. 치열한 수 싸움 끝에 나온 최종안은 노동계 7,530원, 사용자 7,300원.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 흔적이 짙지만 양쪽 모두 상대방의 안에 놀랐다. 사용자가 12.8%까지 높일 줄, 또 노동계가 16.4%까지 낮출 줄 몰랐던 게다. 표결 결과는 12대 15, 시간당 최저임금 7,530원은 이렇게 합법적으로 결정됐다.
예상대로 후폭풍은 거세다. 사용자 측은 "정부를 믿고 욕 먹을 각오로 써 낸 12.8%안이 노동계안의 들러리만 섰다"는 배신감을 토로하며 '정권 거수기' 최임위 거부를 선언했다. 보수언론과 야당, 재계는 연일 최저임금 과속이 초래할 일자리 축소 등 국내외 부작용 사례를 부각하고 눈덩이처럼 불어날 정부의 재정지원 한계 등을 꼬집으며 이번 결정이 '선의로 포장된 지옥 길'이라고 경고한다.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1만원 시대로 가는 청신호이자, 소득주도 성장으로 가는 대전환점"이라고 환영했으나, 최저임금도 못 받는 사람이 233만명에 이르는 현실에서 정부가 뒷감당하지 못할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가보지 않은 길로 발을 떼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지난 대선에서 모든 후보가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했다. 목표연도는 조금 달랐어도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길이라는 공감대는 명확했다. 그러면 큰 발걸음으로 가는 게 맞다. 익숙하지 않은 속도로 인해 단기적으로 폐업과 해고 등 이른바 '시장의 역설' 같은 문제도 생길 것이다. 우리 사회가 그걸 감당하면서 새로운 균형, '뉴 노멀'을 찾아가는 것이 최저임금 16.4% 인상의 메시지다.
이유식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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