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에 따르면, 무려 100만개의 문명이 우주에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그 수많은 외계 문명과 외계인이 왜 한 번도 인류 앞에 나타나지 않는 걸까?”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는 1950년 다른 과학자들과 논의하며 이 같은 질문을 남겼다. 이른바 ‘페르미 역설’이다.
수 많은 과학자들이 이 역설을 풀기 위해 뛰어든 지 약 70년, 역설의 답을 ‘디지털화’에서 찾는 가설이 새로 등장했다. 지난 17일 영국우주연구회(The British Interplanetary Society) 학술지에 제출된 새로운 논문 ‘페르미 역설을 풀기 위한 여름잠 이론’에선 외계인들은 현재 긴 잠에 빠져있다고 말한다. 컴퓨터에서 발생한 열을 식히기 위한 ‘여름잠’ 을 자느라 인류와 마주치지 못했다는 설명에서다.
저자인 앤더스 샌드버그 영국 옥스포드대 인류ㆍ천문학연구소 연구원 등은 우주의 가장 진화한 생명체가 디지털 환경에서 살아남는 것을 선택했다는 가설을 세운다. 외계인들은 환경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컴퓨터에 업로드 하는 식의 ‘인공적 진화’ 방식을 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마치 공상과학(SF)영화에나 나올법한 이야기지만, 그래도 배경은 과학이다. 공동저자인 물리학자 밀란 써코빅은 “생명체가 생물학적인 형태를 넘어서 존재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인류가 현재 지적 결과물이 담긴 문서들을 온라인 저장공간에 올리는 것처럼, 외계인들 역시 영생을 위해 물질적인 신체를 버리고 완전한 ‘디지털화’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논문에선 그러나 외계인들의 이런 생활방식은 필연적으로 ‘온난화’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이들의 생각을 담은 컴퓨터를 가동하며 발생하는 열 때문에 외계 생명체가 사는 공간의 온도도 함께 치솟게 된다는 것이다. 온도가 높아질수록 그들의 컴퓨터 속도는 느려지게 된다. 때문에 외계인들은 더 효율적인 디지털 처리능력을 위해 ‘수동냉각’ 즉, 정신활동을 잠시 중단하는 여름잠을 통해 온도를 낮춘다는 것이다.
가설은 외계인을 만날 확률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지만, 인류의 진화과정을 예측해 볼 수 있는 단서이기도 하다. 써코빅은 “페르미의 역설을 풀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우리가 아는 유일한 지적 생명체인 인류의 발전사를 되돌아 볼 수 밖에 없었다”며 “논문을 통해 다룬 외계인의 모습은 매일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고 나아가 건강까지 기계에 의존하려 하는 우리 스스로의 미래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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