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보안관 동행]
몰카 성추행 이동상인 퇴거 등
300명 2인1조로 시민 불편 해결
오후 9시 반 성추행 신고되자
전력질주 3분 만에 현장 출동
17일 낮 12시 지하철2호선 서울대입구역 3번 출구. 이른 점심을 먹고 역 안을 순찰하던 김성태(40) 이주연(28) 지하철보안관 눈에 수상한 남성이 포착됐다. 에스컬레이터에 오르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모양새가 일반 승객과 영 딴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에스컬레이터를 급히 따라 올라가자 여성 치마 속으로 휴대폰 렌즈를 들이민 모습이 금세 눈에 띄었다. “몰래 카메라 아니오?” 김 보안관이 추궁하자 남성은 손을 떨면서도 “그런 적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하지만 휴대폰에는 에스컬레이터 위쪽에 있던 여대생은 물론 지난 한 달간 서울대입구역 주변 여성들 치마 속을 찍은 동영상이 수십 편 담겨 있었다.
무더운 여름 지하철 내 성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5~7월 성범죄 적발 건수는 월 평균 16.3건으로 다른 기간(7.2건)의 두 배 이상. 이를 예방하고 피해 여성들을 보호하고자 서울교통공사는 2011년부터 지하철보안관을 채용하고 있다. 달리는 전동차 안,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 화장실 등 어디서든 푸른색 상의 정복을 입은 이들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본보 기자가 13일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1시까지 김성태, 이주연 보안관과 동행했다.
두 보안관은 업무 시작과 함께 일단 걷고 또 걷는다. 이날 지하철2호선 강남역과 신대방역 구간을 오가는 전동차와 역사를 거닌 걸음 수만 2만1,916보. 뛰기도 한다. 성추행범 출몰 신고가 오면 전력으로 달린다. 이 보안관은 “흔들리는 차량 안에서는 무릎을 다치기 십상”이라며 주의를 주기도 했다. 실제 전동차 수십 대를 갈아타면서 걷다 보니 어느 새 무릎이 아파왔고, 계단을 헛디뎌 구를 뻔한 아찔한 상황을 겪기도 했다.
오후 9시31분, 두 여성 몸을 뒤에서 연달아 밀착한 성추행범이 낙성대역 도착 예정 차량에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3분 만에 승강장에 도착해 탄 전동차 안에는 마침 야구모자를 쓴 50대 추정 남성이 젊은 여성 뒤에 바짝 붙어 있었다. 옆 칸에 서서 성추행 의심 남성을 지켜봤지만, 낌새를 눈치 챈 남성은 곧 자리를 옮겼다. 다행히 피해 여성은 이 보안관에게 “별 다른 감각이 느껴지지는 않았다”고 했다. 김 보안관은 “현장에서 채증해야 하기 때문에 성추행이 몰카보다 훨씬 적발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성범죄 단속만 하는 게 아니다. 낮에는 이동상인 퇴거조치를 하고, 밤에는 취객을 상대해야 한다. 오후 11시17분 여성이 술에 취해 쓰러져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급히 반대편으로 건너가 기다리자 4분 후 도착한 전동차 안에 한 여성이 의자에 기대 잠들어 있었다. 이 보안관이 20여분 넘게 “성추행을 당한 것 같지는 않은지” 등을 물어 정신을 차리게 한 뒤에야 귀가 전동차에 태워 보낼 수 있었다.
두 보안관은 퇴근길에 “매년 7월이면 성범죄가 절정을 이룬다”고 피로를 호소했다. 김 보안관은 “대부분이 상습인데 지난달에는 2년 전 적발했던 20대 몰카범을 다시 잡았다”고 했다. 현재 지하철1~8호선에는 보안관 300명이 2인1조로 승객들을 보호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에만 몰카나 성추행 등 12만1,799건에 달하는 무질서 행위를 단속했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이들을 찾고, 주변에 없다 해도 지하철 콜 센터로 연락하면 당신 곁으로 곧장 출동하는 보안관을 만날 수 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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