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활 위한 조합 카페 ‘빅핸즈’
일반인 봉사자들과 함께 운영
수익금은 에이즈복지사업 사용
“인식 많이 바뀌어 손님들이 격려”
대구 동구 반야월역 2번 출구 한 건물 3층의 카페 ‘빅핸즈(Big Hands)’에 들어서면 세미나룸과 50여 좌석 주변으로 청소년 전용 콘돔자판기와 후천성 면역결핍증후군(AIDS·에이즈) 관련 포스터 등 낯선 풍경에 시선이 고정된다. 에이즈 감염인 자활을 위한 국내 1호 사회적협동조합 카페다.
2013년 7월 설립, 올해로 5년째를 맞는 이 카페의 모토는 ‘큰 박수, 큰 도움, 큰 격려’다. 당초 에이즈 감염인 3명과 봉사자 10명 등 13명에서 감염인 6명과 봉사자 20명 등 26명으로 조합원이 2배로 늘어난 이 카페는 커피 판매는 물론 콘돔 및 에이즈 감염인의 작품 판매, 인권 강의 등 다양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수익금은 전액 에이즈 복지사업에 사용된다.
빅핸즈는 레드리본 사회적협동조합 김지영(38·여) 대표를 통해 빛을 보게 됐다. “에이즈 감염 사실을 알게 되면 극심한 우울증과 자살 시도 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김 대표는 삶의 의지를 다질 수 있는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데 생각이 머물렀다.
김 대표는 당초 에이즈 감염인으로만 운영되는 카페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신분 노출을 꺼렸기 때문이다. 에이즈 감염인을 보호 대상으로만 보던 생각부터 스스로 바꿨다. 그래서 감염인과 일반인이 함께 운영하는 카페를 열게 된 것이다.
문은 열었지만 혐오시설로 보는 주변의 시선이 따가웠다. 3년 가까이 인근 주민들을 찾아가 설립 취지를 설명했다.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 카페와 장애인 통합어린이집의 협조도 구했다. 다행히 주민들의 반발은 없었다.
에이즈 감염인을 보는 인식도 많이 개선됐다. 멋모르고 카페에 들어온 손님들이 후원자로 바뀌는 보람은 컸다. 두살배기 딸을 안고 온 30대 엄마는 “내 딸에게도 에이즈 교육을 제대로 시켜야겠다”고 말했고, 성서중에 다니는 한 여학생은 “2달간 모았다”며 동전 1만8,700원과 ‘힘내라’는 손편지를 보내왔다.
레드리본사회적협동조합 허향(45·여) 사무처장은 “편견과 싸우는 끝도 없는 싸움에 단비가 내리고 있다”고 흐뭇해 했다.
빅핸즈는 지난달부터 에이즈 인식 개선을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19세 이상 성인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는 문구를 내걸고 ‘청소년 전용 콘돔자판기’를 가게에 배치한 데 이어 다음달까지 라디오용 에이즈 공익광고를 제작하고 있다. 광고는 에이즈 감염인이 직접 만든다.
대학에서 사회복지와 여성학 등을 전공한 김 대표가 에이즈에 눈을 뜬 것은 대학원 시절인 2004년이다.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에서 1년여 동안 일하던 그는 피해받는 소수자를 위해 일하고 싶어 지도교수 추천으로 ㈔대한에이즈예방협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김 대표에게는 카페 설립부터 라디오 광고까지 모두 처음 해 보는 일 투성이다. 그래서인지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좋아한다. 지금은 신영복 선생의 강연을 모은 ‘여럿이 함께 숲으로 가는 길’에 빠져들고 있다. 모두 함께해야 바꿀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김 대표는 “에이즈 감염인이 카페를 직접 운영해도 어색하지 않은 편견 없는 세상이 빨리 오기 바란다”며 “빅핸즈가 희망의 씨앗을 계속 뿌리고 있겠다”고 말했다.
“에이즈 환자를 죽이는 건 의학이 아니라 사회의 인식입니다.”
글·사진 윤희정 기자 yo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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