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19년전 대구 여대생 사망 사건 피고인 스리랑카인 무죄 확정
강간죄 시효 지나 특수강간죄 적용했지만
대법 “흉기나 집단폭행 증명 못해”
2년여 심리 끝에 1, 2심처럼 무죄
19년 미제였던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망사건의 피고인이 공소시효 탓에 결국 무죄를 선고 받았다. 유족들은 “진실은 공소시효가 없다”고 절규했다.
사건은 1998년 10월 17일 대학교 1학년생 정모(당시 19세)씨가 귀가하지 못하면서 시작됐다. 대학축제를 마치고 친구들과 헤어진 정씨는 7시간 뒤 구마고속도로 위에서 화물차에 치여 숨진 채 발견됐다. 정씨 속옷은 사고 현장에서 30여m 떨어진 곳에 놓여 있었고 낯선 유전자(DNA)까지 검출돼 성폭행이 의심됐지만, 경찰은 같은 해 12월 단순 교통사고로 결론 내고 수사를 종결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DNA 감정을 의뢰했지만 용의자를 찾지 못했다.
미궁에 빠졌던 사건은 2011년 스리랑카인 K씨가 다른 여성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붙잡혀 DNA 채취검사를 받으면서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숨진 정씨 속옷에서 발견된 유전자 정보가 K씨 것과 일치하면서 검찰이 재수사에 나선 것이다. 검찰은 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로 데려가 정씨를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은 혐의(특수강도강간)로 K씨를 구속 기소했다. 강간죄의 공소시효 5년은 2003년에, 특수강간죄 공소시효 10년은 2008년 각각 만료된 데 따라 공소시효가 15년인 특수강도강간 혐의를 택한 것이다. 이미 스리랑카로 돌아간 공범 2명도 기소 중지했다.
그러나 특수강도강간죄는 흉기를 휴대하거나 2명 이상이 함께 강도범행을 저지르면서 강간하는 범죄로 증명이 어려웠다. 1심 재판부는 특수강도강간 혐의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입증되지 않았다”며 K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에서 검찰은 K씨 공범으로부터 범행과정을 전해들은 H씨를 참고인으로 법정에 세웠다. 검찰은 이 진술을 토대로 정씨가 K씨 등 스리랑카인 3명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달아나다 사망에 이른 사실을 구체적으로 담았지만 2심 역시 H씨 증언에 일관성이 없고 다른 수사기록과 모순돼 신빙성이 부족하다며 1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 속옷에서 나온 정액 유전자가 K씨 것과 상당 부분 일치해 성폭행의 유력한 증거가 될 수는 있다”면서도 “K씨가 집단 성폭행을 하거나 피해자 물건을 강취한 사실까지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고 판시했다. 성폭행 등의 공소시효(10년)는 끝나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2년여 심리 끝에 2심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K씨는 이 사건과 별개로 2013년 다른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 등으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이 확정돼 강제 추방될 전망이다.
명백한 DNA 증거에도 불구하고 무죄가 선고되자, 검찰과 법무부는 스리랑카 사법당국에 이 사건을 넘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스리랑카에서는 성폭행 공소시효가 20년으로 내년 10월까지 기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주원 대구지검 1차장은 “우리나라에선 시효 완성으로 성폭행에 대한 판단을 받지 못했다”며 “스리랑카 당국과 협의해 신속하게 절차를 밟겠다”고 밝혔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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