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원에는 모조품 대신 갖다놔
檢, 이화경 부회장 횡령 혐의 기소
남편 담철곤 회장도 2011년 같은 행태로 처벌
오리온 “실수… 빼돌릴 의도 전혀 없었다”
담철곤(62) 오리온그룹 회장은 2003∼2009년 오리온 그룹 계열사 자금으로 추상표현주의 작가 프란츠 클라인의 그림 ‘페인팅 11’과 모빌 창시자인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 작품 등 140억원대에 달하는 해외 유명 작가의 고가 미술품 10점을 사들였다. 이 고가 미술품들은 담 회장의 취향에 따라 그의 서울 성북동 자택으로 옮겨진 뒤 식탁 위에, 식당 벽에 장식품으로 사용됐다.
검찰은 2011년 담 회장과 그룹 관계자를 300억원대 비자금 조성과 횡령 등 혐의로 수사하는 과정에서 고가 미술품을 회삿돈으로 사서 임의 처분한 것도 횡령 혐의를 적용해 형사처벌했다. 재벌그룹 오너 등이 회사 자금으로 기업 활동과 무관한 미술품을 사 제멋대로 사용한 행위를 처벌한 첫 사례였다. 이 사건 후 다른 대기업들도 회삿돈으로 산 예술품들을 다른 곳에 보관할 경우 임대차 계약을 맺어 임대료를 받는 관행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오리온그룹은 이런 투명한 관리 흐름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당시 입건유예 됐던 담 회장의 부인 이화경(61) 부회장이 또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회사 소유의 미술 작품 매입ㆍ매각과 전시, 보존 임대 등 관리 업무를 총괄하는 이 부회장은 2014년 2월 경기 양평군 회사 연수원에 보관 중이던 2억5,000만원 상당의 마리아 퍼게이(Maria Pergay) 작품(Triple tier Flat-surfaced Table)을 자택으로 옮겨 장식했다. 대신 연수원에는 모조품을 갖다 놨다. 2015년 5월에는 자신의 사무실에 걸어 놓았던 장 뒤뷔페(Jean Dubuffet)의 그림(Untitled)도 집으로 가져갔다. 계열사 쇼박스가 1억7,400만원에 구입한 것을 빌렸던 것이지만 개의치 않았다.
지난 3월 시민단체들이 고소ㆍ고발한 담 회장 횡령 등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조사1부(부장 이진동)는 수사 과정에서 이 부회장의 범행을 포착, 18일 업무상 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담 회장은 무혐의 처분됐다. 오너 부부가 모두 미술품 관련 횡령 혐의로 처벌을 받게 된 오리온 측은 “이 부회장이 자기 소유의 미술품들을 회사에 전시하는 등 미술품들을 빼돌리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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