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손길에 정겹고 외국며느리 손맛에 흥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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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손길에 정겹고 외국며느리 손맛에 흥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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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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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정남진토요시장의 ‘어머니 텃밭장터’ 풍경. 어머니의 손마디를 거친 제철 채소와 가공품이 장마당 가득 펼쳐진다. 장흥=최흥수기자

“이것 좀 사시요잉~/맛있습니다잉~~/한 개에 천원~/쌉니다 싸요~~”

관산남초등학교 6학년 이소인 학생이 묘사한 ‘북적북적 토요시장’ 풍경이다. 대형 마트에 치이고 현대적 트렌드에 밀려 전국의 재래시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에도 전남 장흥의 전통시장엔 매 주말 활기가 넘친다. 장보러 온 사람의 70% 이상은 지역주민이 아니라 관광객이다. 도대체 뭐가 있길래 이렇게 사람들이 몰리는 걸까? 지난 8일 장돌뱅이처럼 장흥 정남진토요시장을 돌았다.

족발집 옆 커피숍…낯선 어울림과 흥겨움

아침부터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였다. 제대로 장이 설지 은근히 걱정이 앞섰다. 오전 9시, 40여년간 장터를 지키고 있다는 소머리국밥 식당을 찾았다. 입구의 2개 대형 솥단지에는 소머리국밥용 뽀얀 국물과 선짓국에 쓸 벌건 국물이 설설 끓고 있다. 제법 넓은 홀엔 염려와 달리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식사하는 모습이다. 소머리국밥은 8,000원, 돼지고기를 쓰는 메뉴는 모두 6,000원이라는 착한 가격도 맘에 든다.

장터 무대에서는 하루 종일 공연이 이어진다. 최흥수기자
장터 무대에서는 하루 종일 공연이 이어진다. 최흥수기자

뜨뜻한 국물로 늦은 아침을 때우고 바로 옆 커피숍에 들렀다. 재래시장과는 어울리지 않게 깔끔하게 단장한 카페인데, 홀 한편에 ‘왕족발’이라는 안내판이 거슬린다. 원래 족발식당을 운영하다 커피숍으로 바꾸고 족발은 배달만 한단다. 밖에서 보니 ‘○가네 왕족발’과 ‘○가네 커피’라는 간판이 천연덕스럽게 나란히 붙어 있다. 이종교합의 부조화가 이 시장에선 전혀 낯설지 않다. 시장에 들어선 20여개 ‘장흥삼합’ 식당도 대부분 커피숍을 끼고 있다. 달착지근한 믹스커피보다 원두커피를 찾는 관광객을 겨냥한 전략이다.

장흥삼합은 표고버섯+키조개 세트와 한우를 따로 사서 상차림비용을 내고 구워먹는 방식이다. 최흥수기자
3가지 재료를 불판에 구워 쌈으로 먹는다. 최흥수기자

장흥삼합은 토요시장을 전국적으로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지역의 대표 음식이다. 장흥 특산물인 쇠고기와 표고버섯, 득량만의 키조개를 불판에 구워 함께 상추에 싸 먹는다. 식당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3가지 재료를 별도로 판매하고, 상차림 비용(1인 3,000원)을 따로 받는 방식이다. 맛도 맛이지만 최대 장점은 저렴한 가격, 한우갈비살과 꽃등심이 100g에 9,000원대로 정육점 판매가격과 비교해도 비싸지 않은 수준이다. 군 인구보다 한우 사육 두수가 더 많다는 장흥의 장점을 활용한 전략이다.

오전 10시, 좁은 시장 골목에 경쾌한 음악소리가 요란하다. 개량 한복에 스피커를 장착한 카세트를 들고 장터를 누비는 전우(49)씨를 따라갔다. 고무신을 신은 발끝에서부터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토요시장을 개설한 12년 전부터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신명을 돋우는 분위기 메이커다. 토요시장의 또 하나 공식 볼거리는 하루 종일 이어지는 공연이다. 장터 입구에 설치한 상설무대에서는 지역의 문화예술인을 비롯해 초청가수의 춤과 노래가 오후 4시까지 계속된다. 출연자는 연초에 모두 정해진 상태다. 장터 무대의 특성상 집중도는 떨어지는 대신 다리가 저려 올 때쯤 누구나 잠시 쉬면서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이곳에서도 관람객 앞에서 현란한 몸놀림으로 분위기를 띄우는 전우씨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장흥 다문화가정 여성들이 각국의 간식요리를 판매하는 ‘다우리 음식거리’. 최흥수기자
쌀가루 반죽을 꽃 모양으로 튀겨 내는 태국 덕쩍. 최흥수기자

‘다우리 음식거리’도 장흥 토요시장에서 꼭 들러야 할 명물이다. 일본의 타코야키, 베트남 로이꾹(월남쌈), 미얀마 응아뽀쪼(바나나 말이 튀김), 몽골 보츠(만두), 태국 덕쩍(쌀 반죽 튀김), 필리핀 롬피아(고기 야채 튀김) 등 각국의 길거리 간식을 한자리에서 맛 볼 수 있다. 모두 장흥으로 시집온 외국며느리들이 운영하는 가게다. 국내 적응을 돕고 경제적 도움도 주기 위해 군에서 제안한 아이디어 가게들이다.

해연댁, 하동댁, 옥김댁…정겨움을 파는 어머니장터

토요시장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골목은 ‘어머니 텃밭장터’다. 100여명의 어머니들이 직접 기른 농산물을 소쿠리 단위로 조금씩 내놓고 파는 형식이다. 군에서 대형 파라솔을 설치해 땡볕과 비를 피할 수 있게 했다. 파 상추 깻잎 등 기본적인 채소 외에 철마다 장흥에서 나는 농산물과 가공품이 주요 품목이다. 이날 텃밭장터에서 가장 흔한 물건은 노랗고 길다란 죽순과 다양한 색깔의 강낭콩이었다. 이 외에도 헛개나무열매, 파프리카, 제비쑥, 질경이, 귀족호두, 영지버섯, 들기름, 참기름까지 하나하나 어머니의 손마디를 거친 다양한 농산물이 난전에 펼쳐졌다. 다소 생소한 식재료를 살 때면 간단한 요리비법까지 일러주니 누이 좋고 매부 좋다.

다품종 소량판매, 어머니 텃밭장터에 깔린 농산물. 최흥수기자
꼬투리 채 가져온 강낭콩을 시장에서 까면서 판매한다. 최흥수기자
요즘 어머니 텃밭장터에서 가장 흔하게 보는 물건은 죽순이다. 최흥수기자
텃밭장터 어머니들은 모두 택호와 이름을 쓴 명찰을 걸고 있다.
소쿠리에 담은 농산물 하나하나에 어머니의 땀과 정성이 담겨 있다. 최흥수기자
소쿠리에 담은 농산물 하나하나에 어머니의 땀과 정성이 담겨 있다. 최흥수기자

한 소쿠리라야 가격은 기껏 1,000~3,000원 수준으로 가져온 물건을 다 팔아도 큰돈이 될 것 같지 않지만, 어머니들이 열성으로 참여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거 준비하려면 손발 놀려야지, 끌고 오는데 운동되지, 하루 종일 사람 구경하고 말동무 있어 심심하지 않지, 다 좋아.” 충내댁 김종례 어머니의 말이다. 여기에 토요시장에 나올 때마다 군에서 교통비 1만원을 지원한다. 농촌 어른들로선 돈 벌고 건강 지키는 일석이조 소일거리다.

장흥군의 철저한 관리도 토요시장의 신뢰를 쌓는 데 한몫하고 있다. 휴일인데도 ‘원산지 표시 단속’ 어깨띠를 맨 공무원들이 시장 곳곳을 수시로 돌아다닌다. 텃밭장터 어머니는 모두 택호와 이름이 적힌 명찰을 걸고 있다. 해연댁, 하동댁, 성전댁, 충내댁, 옥김댁…. 모두들 이름 걸고 믿음과 정겨움까지 함께 판매한다.

오후로 접어들자 관광버스에서 내린 단체 여행객까지 몰려 시장은 한층 더 시끌벅적해졌다. 장흥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 관광지를 도는 여행상품도 토요시장을 주요 코스에 넣기 때문이다. 군에서 파악하기로 토요시장을 찾는 외지인의 절반 이상은 부산과 경남 사람들이다. 순천영암고속도로 연결로 접근이 편리해진 덕분이다. 부산에서 온 정해석(54)씨는 토요시장 방문이 벌써 3번째다. 이번에는 처가 형제 부부 6명이 보성 녹차밭을 구경하고 들렀다. 이전에는 주로 삼합만 먹고 갔는데, 이날 그의 손에는 도라지와 죽순 한 봉지씩이 묵직하게 들려 있었다.

시장에서 우연히 만난 김성 군수는 ‘소취하 장취평’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중국인에게도 장흥이 인기라고 자랑한다. 알고 보니 ‘소주에 취하면 하루가 즐겁고, 당신에게 취하면 평생이 즐겁다’라는 뜻의 건배사를 살짝 비틀어 ‘당신’ 대신 ‘장흥’을 넣었다. 논어에 나온다는 말에 깜빡 속을 뻔했다. 오후 2시, 장터 무대에서는 여전히 노래공연이 계속되고 있었다. 흥겨움과 정겨움에 취한 토요시장의 열기는 자연스럽게 일요일까지 이어진다.

장흥=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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