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꿀꿀이를 안고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산책을 나가면 종종 “개가 나이가 들었나 보다”는 얘길 듣는다. 내 눈에는 지금도 귀엽기만 하고 ‘시추’ 계의 동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딜 봐서 나이가 들었다는 건가 싶지만 “열네 살”이라고 웃으며 답한다. 그러면 십중팔구는 “오래 키웠다”는 반응이다.
꿀꿀이가 지난주 췌장염에 걸렸다. 예전에는 사람 먹는 간식이나 음식을 귀신같이 잘 찾아 먹어서 탈이 났었는데 이젠 뭘 잘못 먹은 것도 아닌데 구토를 하더니 밥을 먹지 못했다. 꿀꿀이는 나흘간 수액을 맞고서야 겨우 회복했다. 생명이 위독한 건 아니라고 했지만 나이가 있으니 혹시 잘못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밥을 빨리 내놓으라며 호통을 치던 꿀꿀이의 목소리엔 힘이 없어졌다. 피부병, 간에 이어 꿀꿀이의 약 봉투가 하나 더 늘었다.
언젠가부터 꿀꿀이는 평소에도, 잘 때도 혀가 나와 있는 일이 많아졌다. 아랫니가 윗니보다 돌출되는 부정교합인 경우에는 나이를 먹을수록 혀가 나올 확률이 높다는 데 꿀꿀이가 그렇다. 입 주변 털도 듬성듬성해졌다. 지난해 가을부터는 주로 오른쪽으로만 씹기 시작했고 개껌도 딱딱한 것 대신 부드러운 것만 먹게 됐다. 그러다 보니 입냄새도 심해졌다. 지난해 겨울부터는 사람들이 집에 들어와도 인기척을 느끼지 못하고 계속 잠을 잔다. 꿀꿀이는 이렇게 나보다 빠른 시간으로 나이가 들어가고 있었다.
남편하고 처음으로 꿀꿀이 장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미리 어떻게 대처할지 생각해 놓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지만 정작 알아보지는 않고 있다. 알아보면 왠지 더 현실로 다가올 거 같은데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고 있다.
친구가 “꿀꿀이가 죽으면 다른 강아지를 또 키울 거냐”고 물었다. 나는 다른 개에 대해 생각하는 거 자체가 꿀꿀이에게 왠지 미안하다고 했다. 지금까지 들인 마음과 시간, 금전적 비용을 고려하면 사실 엄두가 나지 않는다.
우리나라 반려견 가운데 7세 이상 노령견 비율은 30%에 달한다고 한다. 예전에는 개가 아파도 병원에 잘 데려가지 않거나, 비싼 병원비를 내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면 이제는 가족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반려동물 건강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반려동물의 수명도 늘고 있는 것이다.
검색 사이트에 ‘노령견’이라는 단어를 넣어보니 ‘노령견이 보이는 증상’, ‘노령견이 걸리기 쉬운 질병’, ‘노령견 죽기 전 증상’ 등이 연관, 추천 검색어로 제시됐다. 이 중 동물주제 전문 출판사 책공장더불어 블로그에 올라온 ‘나에겐 검둥이라는 개가 있어요’라는 책의 리뷰가 눈에 띄었다. 소년은 자신과 함께 해준 검둥이가 스무 살이 되어 더 이상 같이 놀 수 없어도, 친구들이 놀려도 항상 검둥이 편이다. 소년은 “검둥아!”하고 부르면 검둥이가 천천히 눈을 떠주는 것만으로도 좋아한다. 절판되어 아쉽긴 하지만 ‘나이든 개 얘기라고 다 비극으로 끝날 필요 있냐’는 유쾌한 리뷰 문구가 마음에 들었다.
소년은 “나에게는 검둥이라는 개가 있어요. 소중하고 소중한 우리 검둥이!” 라고 말한다. 우리에겐 저마다 소중하고 소중한 검둥이들이 있다. 사람보다 빠르게 나이 들어가는 검둥이들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관심과 함께하는 시간이라는 걸 다시 깨닫게 됐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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