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하루키 “흑백 가리는 단편적인 판단은 역사에서 있을 수 없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하루키 “흑백 가리는 단편적인 판단은 역사에서 있을 수 없다”

입력
2017.07.17 14:45
0 0

‘기사단장 죽이기’ 하루키 인터뷰

난징대학살 언급에 대해

우익의 비난은 단편적 사고

인터넷의 흑백논리도 비슷

소설은 그런 것에 대항해야

‘1Q84’ 이후 7년만의 장편 ‘기사단장 죽이기 1·2’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그는 흑백논리를 뛰어넘는 분투를 소설가의 사명이라 했다. 문학동네 제공
‘1Q84’ 이후 7년만의 장편 ‘기사단장 죽이기 1·2’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그는 흑백논리를 뛰어넘는 분투를 소설가의 사명이라 했다. 문학동네 제공

“현재 인터넷 사회에서는 ‘순수한 흑(黑)이냐 백(白)이냐’ 하는 원리로 판단이 이루어지기 일쑤입니다. 그렇게 되면 말이 딱딱하게 굳어 죽어 버립니다. 사람들은 말을 마치 돌멩이처럼 다루며 상대에게 던져댑니다. 이것은 매우 슬프기도 하거니와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 1·2’(문학동네 발행)로 다시 국내 도서 시장에 ‘하루키 열풍’을 몰고 온 무라카미 하루키(68)는 17일 공개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소설에서 난징대학살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우익단체의 이런저런 위협을 받은 데 대한 답변이다. 동시에 말 하나, 행위 하나 끄집어내 단죄하는 현대 인터넷 문화에 대한 반론이기도 하다. ‘기사단장 죽이기 1·2’는 현재까지 40만부(20만세트)를 찍었다. 다음은 문학동네가 진행한 무라카미 하루키와의 일문일답.

-데뷔 40년이 되어간다. 데뷔 이후 달라진 점, 그리고 달라지지 않은 점을 꼽는다면.

“첫 소설을 썼을 때가 스물아홉이었습니다. 그 때는 ‘소설 같은 건 앞으로 얼마든지 쓸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예순여덟이 되고 보니 ‘남은 인생에서 소설을 몇 편이나 더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이것이 커다란 차이입니다. 그렇지만 글쓰기를 즐긴다는 점만은 예나 지금이나 거의 같습니다. 마치 악기를 자유로이 연주하는 것처럼 말이죠.”

-‘1Q84’ 이후 7년 만의 본격 장편소설이다. 구상에서 탈고까지 과정을 설명해 달라.

“구상에서 탈고까지 1년 반이 걸렸습니다. 소설을 쓰는 동안, 기분전환으로 번역을 조금 한 것 말고는 거의 다른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자연스럽게 썼습니다. 써지면 쓰기 시작해 매일 써나가고, 다 쓸 때까지 쉬지 않습니다. 자유로움이 가장 중요합니다. 구상이란 건 제게 대체로 방해일 뿐입니다.”

-이번 작품에 냄새에 대한 묘사가 많다. 엄마를 떠올릴 때는 비 냄새를, 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재규어 냄새를 연결시키는 방식이다. 후각이 부각된 이유는.

“되도록이면 오감(五感)을 전부 활용하려 합니다. 특별히 후각을 의식하지 않았는데, 듣고 보니 그런지도 모르겠군요.”

-‘생각하는 바대로 행동하는 것’ ‘자신을 믿는 것’에 대한 강조가 많다. 실제 자신은 그러했다고 믿는 지, 아니면 다른 가능성을 저울질했는지 궁금하다.

“일상생활에서는 의견이나 신념을 꽤 확실히 지니는 편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근본적으로 제가 믿는 바는 그런 의견이나 신념을 한순간에 무화시켜 버리는, 초월적인 그 무엇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 힘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거기에 몸을 맡기지 못하면 소설을 쓸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본 우익의 공격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역사 논란은 한국도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역사에서 순수하게 ‘흑백을 가리는 판단’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개인적 견해입니다. 소설은 그런 단편적 사고에 대항하기 위한 존재라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은 지금이야 말로 좋은 의미에서의 전투력을 갖춰야 할 때입니다. 말을 따뜻한 것, 살아있는 것으로 되살려야 합니다. ‘양식(decency)’과 ‘상식(common sense)’이 있어야 합니다.”

-한국은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심각하다. 이번 작품에서 동일본 대지진을 다뤘는데, 재난 이후 문학이란 무엇일까.

“그렇게 크고 깊은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느냐는 대단히 어려운 과제입니다.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지금까진 아쉽게도, 적어도 제게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억해 둬야 할 일은 명백한 목적이 있는 소설은 문학적으로 성공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건 개별 작가들의 과제입니다. 목적을 품되 목적을 능가하는 것, 아무리 어려워도 반드시 도전해야 하고 구축해내야 합니다.”

-소설, 문학 대신 ‘이야기’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유가 있는가. 이야기의 힘을 느낀 적은 언제인가.

“이야기란 머리로 생각해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몸 속에서 자연스레 넘쳐 나오는 겁니다. 의미, 정의, 무슨 주의 같은 것을 넘어섭니다. 이성·선악도, 시공간과 언어나 문화의 차이도 뛰어넘어 사람의 마음을 물리적으로 움직이는 ‘선량한 힘’을 지닌 것입니다. 그런 힘을 생생하고 정확한 문장으로 옮기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저는 오랜 세월 나름 노력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생각입니다.”

-‘기사단장 죽이기 1·2’ 반응이 뜨겁다. 한국 독자층이 두터운데, 한국을 찾을 생각은.

“기회가 있다면 좋겠지만, 공적 행사나 미디어에 출연하는 걸 좋아하질 않아 결국 그런 초대를 사양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오랜 세월 제 책을 변함없이 열심히 읽어주신 한국 독자 분들께는 각별한 고마움을 느낍니다. 이번 작품도 즐겁게 읽어 주신다면 정말 기쁘겠습니다.” 이윤주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