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량 지난해 3분의 1
논바닥 갈라지고 밭 작물 누렇게
소방차에 군부대 급수차까지 출동
“중부지방 비 절반만 왔으면…”
충청 등 중부지역이 집중호우로 피해가 속출한 가운데 포항 경주시 등 경북 동해안은 유례 없는 가뭄에 허덕이고 있다. 논바닥과 저수지가 거북등처럼 갈라지고, 부추 콩 등은 생육부진으로 올해 수확은 포기해야 할 지경이다.
14일 오후 포항 남구 대송면 장동리와 홍계리 논은 바닥이 쩍쩍 갈라졌고, 심은 모는 시들고 있었다. 한쪽에선 벼 줄기가 검게 변했고, 시들다 못해 쓰러진 것도 곳곳에 보였다.
더 큰 문제는 벼보다 콩과 참깨, 고추 등 밭 작물이다. 이번 장마에도 비다운 비가 내린 적이 없다보니 심각한 생육부진 현상을 보이고 있다. 포항 남쪽 지역 밭에 심은 참깨는 예년이면 이맘때 키가 1m이상 돼야 하지만 50㎝ 정도에 불과했다. 어렵게 물을 대 심은 콩과 고추는 벌겋게 말라가고 있었다.
경북 울진군 근남면 등지에서도 지난달 심은 콩이 예년 이맘때면 40㎝이상 자라야 하지만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아 농민들은 수확량 감소를 걱정하고 있다. 콩밭 곳곳에는 말라 죽어 벌건 속살이 드러나 있었고, 농민들은 휴일인 16일에도 울진농업기술센터에서 키운 콩 묘종을 옮겨 심곤 했다.
특히 포항 특산 부추는 가뭄으로 지하수위가 낮아지면서 해수가 침범, 염도가 높아져 서해안에서나 볼 수 있던 염해가 나타나고 있다. 대부분 관정을 이용, 물 걱정이 없었지만 올해는 지하수 염도가 예년의 2배에 이르고 있다.
이 지역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면서 2.8㎞나 떨어진 칠성천까지 양수기로 물을 끌어대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포항시 남구 대송면 산여리 주민들은 지난 14일 해발 467m인 운제산 대왕암에 올라 기우제를 지내는 등 최근 포항지역에서 기우제를 지낸 마을만 3, 4곳에 이른다.
농민 김진규(70ㆍ포항 남구 대송면)씨는 “벼농사도 엉망이고 참깨, 콩, 고추는 물론 하우스 부추까지 말라서 쳐다 보기도 힘들 정도다”며 “주민들이 물탱크에 물을 받아 트럭에 실어 나르지만 부족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충청지역에 물폭탄이 터진 16일, 포항지역에도 먹구름이 몰려왔지만 비다운 비는 내리지 않았다. 빗방울이 비쳤지만 16일 기상대 강우계는 0.0㎜를 기록했다.
대구기상지청과 포항시 등에 따르면 올해 포항 경주지역 강수량은 지난해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경북 동해안 강수량현황(㎜)
이처럼 가뭄이 계속되자 16일 현재 포항지역에 당장 물을 대지 못하면 수확에 차질이 예상되는 논만 31.6㏊에 이르고, 하루가 다르게 피해면적이 늘고 있다. 4.9㏊의 논은 모내기 심기를 넘겨 대체작물을 파종해야 하지만 이마저 비가 오지 않아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 생육 부진과 시들음이 발생한 밭 면적은 9.2㏊에 달한다.
일부 지역에선 생활용수 부족현상도 빚어지고 있다. 지난해 이맘때 저수율이 90%에 이르던 포항시 남구 오천읍 진전지와 구룡포읍 눌태지는 현재 저수율이 각각 38.6%와 45.9%에 불과하다. 남구 청림동과 오천읍 일대 보조수원인 오어지 저수율은 25%다.
경북 동해안 자치단체들은 하천굴착과 대체수원 확보에 진땀을 빼고 있다. 소방차는 물론 군부대 급수차까지 지원을 요청했고 읍ㆍ면별로 자체 시민들을 설득해 소형트럭을 이용, 물탱크를 실어 나르는 급수 봉사를 유도하고 있다.
포항시 농업기술센터 최영섭 소장은 “최소한 100㎜이상 비가 와야 가뭄에 도움이 될 것 같다"며 “소방차와 군부대 급수차 동원에 많은 비용이 들어 중앙 정부차원의 지원과 타 자치단체의 협조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경북 동해안지역 가뭄이 심각한 것은 일본 동남쪽에 자리잡은 북태평양 고기압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대구기상지청 관계자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일본 남동쪽 해상에 중심을 두고 있어서 남서 해상에서 들어오는 수증기자 서쪽에 비를 뿌리고, 소백산맥 동쪽은 상대적으로 건조해져 비구름 발달이 약한 반면 기온은 높게 오르고 있다”며 “20일쯤 경북 동해안에 비예보가 있지만 26일까지 비다운 비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고 전망했다.
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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