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미국 서부 오리건주의 고속도로를 달리던 트럭이 공사현장을 피하려고 급제동하면서 전복하는 사고가 났다. 인명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싣고 가던 컨테이너가 다른 승용차들과 충돌해 거기에 실린 3,400㎏의 먹장어가 도로로 쏟아졌다. 먹장어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하얀 점액을 대량 분비한다. 그래서 사고 현장이 흡사 SF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기괴한 풍경이었다. 연안의 화물선에 실려 태평양을 건널 예정이던 이 컨테이너들의 목적지는 한국이었다.
▦ 포장마차에서 ‘꼼장어 구이’로 나오는 먹장어는 바다의 붕장어(아나고) 갯장어(하모)나 바다에서 태어나 강으로 돌아오는 민물장어인 뱀장어 같은 장어류와 계통이 다르다. 원시 척추동물로 수생이긴 하지만 다른 장어들과 달리 어류는 아니다. 턱뼈도 비늘도 지느러미도 없고 입은 흡착판 같은 형태다. 그래서 원구류(圓口類)다. 하지만 생김이 비슷해 바닷장어 3총사로 불린다. 장어는 고단백에다 불포화지방산과 여러 비타민이 있어 기력을 북돋우는 데 도움을 주는 대표적인 보양 식재료의 한 가지다. 동의보감에도 근육과 뼈를 강하게 하고 영양실조, 산후 허약, 배탈 설사 등에 효험이 있다고 나와 있다.
▦ 장어 소비가 갈수록 느는데 국내 생산으로는 공급이 턱없이 모자라 수입이 크게 늘었다. 장어 먹는 데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나라는 일본이다. 세계 전체 소비량의 70%를 차지한다는 일본 역시 연간 소비의 절반 정도는 7~9월로 몰린다. 한국은 삼계탕이 먼저이지만 일본에서는 장어가 최고 보양식이다. 우리 복날처럼 여름 보양을 위한 날도 따로 있다. 오행사상에서 유래한 토왕지절(土旺之節ㆍ입춘 등 사철이 시작하는 절기 직전 18일 정도 기간) 중 십이간지의 축(丑)에 해당하는 날이다. 대서 즈음과 입추 직전이다.
▦ 소비량이 늘다 보니 특히 민물장어의 경우 씨가 마른다는 소리가 나온 지 오래다. 유럽에서는 치어의 국제거래를 2013년에 금지했다. 대안으로 나온 게 치어를 사서 키우는 불완전양식이 아니라 인공수정으로 성어를 키우는 완전양식인데 대량 소비국인 일본 한국에서 성공했다. 문제는 채산성이다. 치어 한 마리를 성어로 키우는 비용이 지금 장어 한 마리 시장가격과 맞먹는다. 보양식이라고 누구에게나 좋은 것은 아니다. “장어는 몸이 약한 사람에겐 약이지만 건강한 사람은 좋을 게 없다”는 의사들의 말도 귀담아 들어야겠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