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바랜 글자는 여기저기 떨어져 나갔다. 긁히고 찌그러진 상처투성이 간판은 휘황찬란한 조명으로 치장하고 컴퓨터로 반듯하게 뽑은 ‘요즘’ 간판과 달라 오히려 눈길이 간다. 유행은커녕 시대와 동떨어진 모습에 이질감이 느껴질 법도 하지만 사람의 손길이 담긴 간판은 온기를 뿜어내며 시선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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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더 밝나’ 경쟁하는 요즘 간판에 눈이 부신다. 간판이 내는 강한 빛에 눈길을 피하게 된다. 얽히고 설키고 곳곳에서 뜬금없이 튀어나온 간판을 구분하려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시선을 조금이라도 끌어보기 위한 노력이 지나치면 간판을 거는 이도, 간판을 보는 이도 피로하게 만든다. 공해가 된 간판이 넘쳐난다. ‘경쟁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라며 무작정 유행을 좇은 결과 아무도 돋보이지 못하게 된 것이다. 경쟁 대열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며 ‘그냥 이대로, 나는 나대로’ 욕심을 버린 간판에선 배려심까지 느껴진다.
형편대로 능력껏 만들고 쓰고 그리고 고쳐 붙인 간판에 담긴 것은 업체명과 전화번호 뿐이 아니다. 업종이 바뀌고 업체가 바뀐 세월이 차곡차곡 쌓이기도 하고 세상을 향한 외침이 담기기도 한다. 무엇보다 “별 거 없다. 그냥 먹고 살려고 만들었다”고 무심하게 말하는 주인의 고단함이 가득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박미소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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