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울지 않겠다” 다짐한 뒤
치밀한 전략으로 협치모델 제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22일 여야 4당 원내대표 간 국회 정상화 합의가 무산되자 “한 달 동안 참고 참으며 들었는데, 너무하지 않습니까”라고 답답함을 토로하다 끝내 눈물을 보였다. 밤잠을 설쳐가며 설득에 공을 들였는데도 야당은 “무능의 눈물”이라느니 “약한 척 한다”느니 하는 비아냥만 늘어놓기 바빴다.
이후 우 원내대표는 독해졌다. 진정성과 의지만을 앞세우기보다는 냉철함과 치밀함을 키우겠다고 마음 먹었다. 우 원내대표는 주변에 “더 이상 울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 13일 청와대의 대리 사과와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의 자진 사퇴로 물꼬를 튼 국회 정상화는 ‘열정과 냉정 사이’를 넘나든 우 원내대표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박 3일간 롤러코스터를 탔던 막후 협상의 전말은 이렇다.
“협상은 마지막에 된다”
한 달 넘게 이어진 대치 정국에서 청와대와 야당의 치킨 게임으로 여당은 그야말로 샌드위치 신세였다. 여권 내에서조차 7월 국회는 사실상 물 건너 갔다는 회의론이 팽배했고, 급기야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은 10일 밤 우 원내대표에게 “송영무, 조대엽 두 후보자 임명을 진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러나 저러나 어떤 경우에도 야3당은 추경에 협조할 뜻이 없다는 최종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우 원내대표는 찜찜했다. 여야 협상이 아직 무르익기도 전에 너무 쉽게 포기해버리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19대 국회부터 을지로위원회를 이끌며 첨예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며 얻은 “협상은 마지막에 된다”는 깨달음이 다시 떠올랐다. 조사권도 없는 야당 위원회가 을의 입장에서 갑의 각종 횡포에 대항해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던 시절에 얻은 각성이었다. 집권 여당 원내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문재인 정부 협치의 첫 시험대를 파국으로 끝낼 수 없다는 책임감도 솟았다. 사실상 대통령의 인사권 연기를 요청하는 우 원내대표의 ‘도발적’ 도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순차적 대응으로, 4당 체제를 정복하라”
청와대로부터 72시간의 시한을 얻어냈지만, 현실은 막막했다. 처음 경험해보는 4당 체제, 다당제 구조 하에서 여소야대 집권여당 원내대표의 한계를 그간 뼈저리게 절감한 탓이다. 야당의 얘기를 듣고, 청와대에 보고하는 ‘전달책’에 머무르는 게 더 이상 능사가 아니었다.
협상의 주도권을 쥐고 판을 만들기로 했다.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과 박홍근 원내수석부대표가 함께 머리를 맞댔다.
중재안부터 만들었다. 추미애 대표 대신 청와대의 사과로 국민의당을 달랜 뒤 두 후보자 중 한 사람의 사퇴로 나머지 보수 야당의 마음을 얻는 게 마지노선이었다. 원내대표실에선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청와대와 여당의 언론 대응 메시지 내용까지 조율했다고 한다.
협상 시나리오가 완성된 뒤에는 구체적인 액션플랜도 시간대별로 정리했다. 특히 7월 마지막 본회의(18일)에서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이 반드시 처리될 수 있도록 역순으로 계산해 적용했다. 우 원내대표가 13일 낮 부랴부랴 청와대를 찾아간 것 역시 늦은 오후나 저녁으로 넘어가게 되면 보수 야당의 국회 복귀가 주말을 넘길 것이 걱정돼서였다.
그러나 실제 협상에 나서 설득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4당 체제의 특성을 고려한 입체적이고 다양한 맞춤형 전략이 필요했다.
한때 한솥밥을 먹었던 국민의당은 ‘옛 정’을 살리되 최대한 감정선을 자극하지 않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야3당 중 의석수가 제일 적은 바른정당에게는 ‘참보수 역할론’을 부여해주는 게 핵심이었다. 참보수의 기치를 든 바른정당이 자유한국당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차별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몸집이 가장 큰 자유한국당은 오히려 후순위로 밀렸다. 일단 국민의당을 당겨오고 바른정당이 쫓아오게 하면, 자연스레 고립된 자유한국당도 마지못해 들어오는 단계적 구도가 그의 구상이었다.
협상 채널도 다양화했다. 야3당 원내대표에서 막히자 당 대표들에게도 SOS를 쳤다. 실제 우 원내대표는 야3당 원내대표는 물론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와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과도 회동을 가졌다. 그의 기대대로 정국을 푸는 데 두 사람의 역할이 컸다는 후문이다.
우 원내대표는 2박 3일간의 협상 과정을 회고하며 “한편의 드라마였다. 정치는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하면 모든 게 안되고 하려고만 하면 못할게 없다”고 했다. 민주당 수도권 재선 의원은 “청와대 거수기나 출장소에 그쳤던 박근혜 정부 집권 여당과 달리, 여소야대 4당 체제에서 청와대와 야당을 중재하는 협치의 성공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평가했다.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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