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최근 동맹국들과 잇따라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새로운 ‘스트롱맨 친구’로 부상하고 있다. 두 정상이 13일(현지시간) 파리 회담에서 이전과 다르게 급속도로 밀착한 모습을 보이면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트럼프 대통령을 사로잡은 마크롱 대통령의 외교 기술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양국 정상은 이날 “일부 의견이 다른 사안이 있지만 그것이 우리의 연대를 막진 못한다”고 입을 모으며 우정을 과시했다. 트럼프는 완고하게 파리기후협정 탈퇴를 고수하던 입장에서 한 발 물러나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자”고 밝혔다. 파리에서 발생한 테러 피해를 지적하며 지난 2월 내놓은 “파리는 더 이상 (예전의) 파리가 아니다. 누가 그곳에 가겠냐”는 악담도 이날에는 “훌륭한 대통령 덕분에 파리가 매우 평화롭고 아름다워질 것이란 느낌이 든다“는 극찬으로 변했다. 이번 만남은 두 정상이 갖는 네번째 회담으로, 마크롱은 미국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 100주년과 프랑스 대혁명 기념일 군사퍼레이드 참석을 겸해 트럼프를 초청했다.
두 정상의 극적인 변화는 마크롱의 ‘트럼프 맞춤형’ 의전이 적중한 결과라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마크롱은 이날 오후 군사박물관, 퇴역 군인을 위한 시설 등이 모인 거대 군사기념시설 앵발리드에서 트럼프 부부를 맞아 나폴레옹 무덤 등을 관람했다. 스스로를 “군사 애호가(big military person)”라고 칭한 트럼프의 취향을 고려한 선택이다. 이러한 군 일색의 일정은 14일 프랑스군 1,200명과 장갑차, 전투기 등이 동원된 대규모 퍼레이드에 미군 190명이 동참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영국 가디언은 “마크롱은 자신을 국제 무대에서 트럼프가 툭 터놓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새 ‘베스트 프렌드’로 여기도록 전략을 바꿨다”고 분석했다.
트럼프도 마크롱의 환대에 마음을 연 듯 친밀한 보디랭귀지로 화답했다. 수차례 마크롱의 등과 어깨를 두드려 거리를 바짝 좁혔고, 앞서 5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첫 정상회담 당시 악수로 기싸움을 벌인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손을 내민 모습도 ‘덜 거칠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나폴레옹 무덤 관람 후에는 먼저 마크롱에게 “동승하겠냐”고 물은 뒤 자신의 전용 리무진 ‘비스트’에 함께 탑승해 엘리제궁으로 이동하기까지 했다.
테러 안보 공조 등 양국의 공통 분모가 있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마크롱이 트럼프를 상대로 구사한 냉온 전략이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트럼프와 대립각을 세우며 독자 노선을 선언한 것과 대조적으로 “마크롱은 유럽의 중심축 자리를 다시 차지하기 위해 트럼프의 귀에 대고 (듣기 좋은 말을) 속삭일 필요가 있다면 기꺼이 이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고 미 CNN은 지적했다.
다만 이날에도 트럼프는 비뚤어진 여성관을 드러내는 발언을 일삼아 구설에 휩싸였다. 그는 앵발리드 관람 도중 마크롱 대통령의 부인 브리지트 여사에게 “몸매가 매우 좋다”고 인사를 건넨 후, 마크롱에게도 “부인의 몸매가 정말 좋다. 아름답다”고 재차 말했다. 이에 과거 여성 외모에 관한 부적절한 발언이나 여성 혐오적 언사로 물의를 빚어 온 트럼프가 또다시 왜곡된 성인식을 드러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프랑스 영문매체 ‘프랑스24’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서 ‘트럼프가 영부인을 성희롱했다’는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백악관은 이번 발언에 대해선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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