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민주화 및 인권운동의 상징이었던 류샤오보(劉曉波·61)가 13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지난 5월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가석방돼 교도소 밖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류샤오보는 병세가 악화돼 위독 상태에 빠졌고,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그는 해외에서 치료받기를 원했지만, 류샤오보의 반체제 활동이 두려웠던 중국 정부가 끝까지 요청을 거부해 향후 국제 사회의 비난을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하와이대학에서 중국 철학과 현대 정치 강사로 활동했던 류샤오보는 1989년 중국에서 톈안먼(天安門) 사태를 계기로 시위대 대표로 정부와 협상을 벌였다. 이후 그는 일당체제 종식 등 중국의 민주개혁을 요구한 `08헌장` 선언을 주도해 2009년 ‘국가전복선동죄’ 혐의로 11년 형을 선고받았다. 중국 민주화를 향한 그의 노력은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아 201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중국 인민들을 위해 비폭력 투쟁을 멈추지 않았던 그가 남겼던 말들을 회상한다.
중국인들에게 인터넷은 신이 주신 선물입니다.
“중국인들에게 인터넷은 신이 주신 선물입니다.”
류샤오보는 인터넷에 글을 기고하는 방식으로 대중에게 자신의 활동을 알렸다. 류샤오보는 “중국 정부가 사이버상에서 ‘만리장성’을 쌓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의 심한 검열 속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냈던 류샤오보는 “국가 정권과 사회주의 제도의 전복을 목적으로 정보를 다양한 지역에 빠르게 전송하고 사회적 파장이 크며 대중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는 인터넷의 특징을 이용해서 자신이 저술한 글을 인터넷 사이트에 실었다”는 2009년 ‘국가전복선동죄’ 판결문 중 일부 내용을 통해 그의 집필 활동이 중국 인민에게 막대한 영향을 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에겐 적이 없다” ‘빈 의자’ 수상식에 최종 변론 낭독
“나는 적이 없으며 증오도 없다.”
류샤오보는 75년 만에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불참한 수상자다. 201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나 중국 정부의 반대로 참가가 어려워져 노벨위원회는 ‘빈 의자 시상식’을 진행했다. 당시 수상식에는 수상 소감 대신 류샤오보의 최후 변론 “나에겐 적이 없다”가 낭독됐고, 수상 증서는 류샤오보가 앉았어야 할 빈 의자에 놓였다. 변론에 “나를 감시하고 체포한 경찰, 검찰, 나를 심판한 판사 중 누구도 나의 원수가 아니다.”고 강조한 류샤오보는 개인보다는 중국 체제 자체를 비난하는 데 초점을 뒀다.
당시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중국에서 기본적 인권을 위해 기나긴 비폭력적인 투쟁을 벌이며 중국 인권 개선을 위한 광범위한 투쟁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후 중국 정부는 노벨상 시상식 현장을 담은 ‘빈 의자’ 사진을 모두 검열 삭제했다.
“자유로운 표현은 인권의 기본” 중국 인권운동의 상징
“자유로운 표현은 인권의 기본이며, 인간 본성의 뿌리와 진리의 어머니입니다.”
류샤오보는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 중국 체제를 비판했다. 류샤오보는 ‘08헌장’에서 중국의 일당독재체제가 ‘문화대혁명’, ‘톈안먼 민주화 운동’에서 중국 국민의 권리를 탄압하고 대규모 참사를 초래한 사실을 비판했다. 체제의 변화를 주창한 류샤오보는 ‘자유’, ‘인권’, ‘민주’ 등의 원칙을 제시하며 “인간의 자유를 박살 내는 행위는 인권을 모욕하고 인간 본성을 억누르며 진리를 억압하는 것”이라 말했다. 표현의 자유가 있는 국가를 역설했던 류샤오보는 중국의 대표적인 ‘반체제 작가’였다.
우리 민족이 증오 대신 사랑으로 변화하길 바란다
“우리 민족의 발전과 사회 변화를 지켜보면서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초월해 정권의 적개심을 극복하고, 증오 대신 사랑이 있길 바랍니다.”
비폭력 운동으로 인권 향상에 앞장섰던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류샤오보는 중국 정부의 활동 제약 속에서도 증오나 적개심보다는 사랑으로 사회 변화로 이어지길 바랬다. 모든 중국 시민들이 두려움없이 자유롭게 정치 견해를 가지며 소수 의견이 존중 받길 소망했던 류샤오보는 중국 민주화 운동의 희망과도 같은 존재였다.
김빛나 인턴기자(숙명여대 경제학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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