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측근 2명이 바티칸 공식매체를 통해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와 그를 지지하는 미국의 복음주의를 격렬하게 비판하는 기사를 게재해 주목을 받고 있다.
1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교황청 검수 후 출판되는 매체 ‘라 치빌타 카톨리카’에 게재된 이 기사는 미국의 ‘복음 근본주의’가 구약성경을 오독함으로써 기후변화를 부정하고 이민자와 무슬림을 배척하며 분쟁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기사는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배넌이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신학자 존 러시두니의 철학을 수용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또 러시두니의 철학은 “국가를 종교에 종속시키며, 이는 이슬람 근본주의와 다를 바 없”으며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집단 이슬람국가(IS)가 퍼트린 신정정치와 “뿌리가 같다”고 비판했다.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가 구약성경에 나오는 묵시록에 대한 공포를 이용해 세상을 선과 악으로 이분하고, 미국을 ‘신정 국가’로, 그 적대국은 멸망시켜야 할 이교도 국가로 해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교황청 전문가들은 이 기사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직접 지지를 받았을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글을 쓴 안토니오 스파다로 ‘라 치빌타 카톨리카’ 편집장과 마르셀로 피게로아 교황청 신문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아르헨티나판 편집장은 프란치스코 교황 측근으로 분류된다.
특히 이 기사는 지난 1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복음주의 종파 기독교인들을 만난 후 목사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단체 기도를 올린 뒤에 게재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에서 복음주의 기독교인 약 81%의 지지를 받았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트럼프 대통령은 사이가 좋지 않다. 대선후보 시절 트럼프 대통령과 교황은 멕시코 국경에 벽을 세우는 공약을 놓고 서로를 직접 겨냥해 설전을 벌인 바 있다. 트럼프 취임 후인 5월 회담에서는 교황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기후변화 대응을 주문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6월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를 공식 선언하면서 이를 무시했다. 교황청은 “뺨을 맞은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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