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서 말하기는 정치인의 필수덕목
비정규직 처우개선 너무나 당연해도
정규직 전환 요구는 따져 볼 점 많아
이언주 국민의당 의원의 ‘동네 아줌마’ 발언 파문이 잦아들지 않는다. 이 의원이 11일 기자회견을 열어 “부적절한 표현으로 상처를 받은 분이 계신다면 죄송하다”고 사과했지만 진화에는 역부족이다. 이틀 뒤 ‘직접 피해자’인 급식실 조리사는 물론이고, ‘간접 피해자’인 요양보호사, 간호조무사, 전업주부 등이 모여 국민의당의 공식 사과와 이 의원 제명을 요구했다. ‘동네 아줌마’ 발언 파문은 여러모로 씁쓸하다. 첫째는, 숱한 막말 파문을 거치고도 나아지지 않는 정치인의 ‘언력(言力)’ 수준에 한숨이 나온다. ‘같은 말이라도 어 다르고 아 다르다’는 속담은 정치인에게는 의미가 각별하다. 모든 정치활동은 결국 말로써 행해진다. 따라서 말을 가릴 줄 아는 능력은 정치인의 필수 요건이다. 의정 선진국의 정치인들처럼 고도의 유머감각과 여유까지 갖추라는 게 아니다. 부적절한 언사나 시정잡배의 욕지거리 같은 말은 피해 달라는 최소 요구 기준이다. 최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막말이 정국경색을 부른 데 이은 이 의원의 막말은, 아직 그 정도의 요구도 충족하지 못하는 정치현실을 일깨운다.
둘째로는, ‘미친 X’라는 비속어까지 그대로 담아 이 의원의 발언이 보도된 것도 뒷맛이 개운찮다. 언론의 직업윤리와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사적인 대화가 몰래 녹음돼 기사가 나간 것”이라는 이 의원의 해명이 거짓이 아니라면 그렇다. 취재현장에서 정치인 등 취재원들과의 사적인 대화에서 고상한 말만 오가는 게 아니다. 특히 친한 취재원과의 대화에는 비속어가 쉬이 섞여 든다. 기사 작성, 또는 편집 과정에서 걸러질 뿐이다. 그런 여과 없이 이른바 ‘화장실 대화’까지 그대로 보도하는 언론행태는 상상하기도 어렵다. 공사의 구분은 정치인이나 공직자뿐만 아니라 언론에도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동네 아줌마’ 발언 파문의 여파로 학교 비정규직 문제가 지나치게 단순화 되는것도 눈에 거슬린다. 이재명 성남 시장은 SNS에서 이번 파문과 관련, “머리를 쓰나 손을 쓰나 발을 쓰나 모두 귀한 노동이고 파업은 노동자의 권리”라고 밝혔다. 맞는 말이다. 이 의원의 발언이 학교 급식 노동자, 나아가 전업주부를 폄하한 것도 사실이다.
그의 이런 잘못에도 불구하고, 이번 파문으로 자칫 학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는 사회 분위기는 걱정스럽다. 비단 학교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개선 요구에는 사회 전체가 귀를 기울여 마땅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움직임이 잇따르고,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이 추진되고 있는 것도 반갑다. 이런 분위기에서 학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의가 활발해질 만하고, 여론도 대체로 우호적이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는 분명한 전제가 있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처우가 다른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평등의 원리가 그것이다. 다른 일에 대해서도 비슷한 대우를 하자는 사회적 합의까지는 아직 아득하다. 더욱이 최종 부담을 함께 나누어 져야 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알고 난 뒤에도 지금처럼 많은 국민이 찬성할까.
학교에는 가르치는 선생님만 있는 게 아니다. 흔히 ‘서무 선생님’이라 불리는 행정직 직원도 있다. 일터가 학교라는 이유로 공무원연금이나 사학연금 수혜자가 됐다. 학교 급식 노동자의 정규직화 종착점은 ‘급식 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다. 당장 전국 곳곳에 즐비한 음식점의 주방과 홀에서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그 많은 ‘이모님’에게는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나아가 지난해 기준으로 공무원연금 충당부채가 600조원이 넘고, 2015년의 부분개혁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보전할 적자가 지난해 2조2,000억원, 올해 2조6,000억원으로 늘고 있어, 국민 주머니에서 그만큼 더 많은 돈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도 막연히 누군가에게 좋은 일이라는 이유로 찬성해야 할까. 이처럼 복잡한 문제를 국민 정서에 기대어서만 풀어 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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