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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저녁을 찾아서]며칠 밤새워도 수당 無 ‘노동자 자유이용권’ 누가 허락했나

입력
2017.07.1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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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개발업체,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이 모여 있는 경기 성남시 판교의 테크노벨리는 밤 늦게까지 각 사무실이 뿜는 불빛으로 환하다. 화려한 불빛의 이면에는 과로와 번아웃에 시달리는 열악한 노동환경이 자리하고 있다.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게임 개발업체,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이 모여 있는 경기 성남시 판교의 테크노벨리는 밤 늦게까지 각 사무실이 뿜는 불빛으로 환하다. 화려한 불빛의 이면에는 과로와 번아웃에 시달리는 열악한 노동환경이 자리하고 있다.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악용되는 포괄임금제

야근 일상인 3년차 게임업체 직원

10시 후 퇴근해도 택시비 1만원뿐

밤샘 땐 퇴근기록 없어 못 받기도

계약서에 ‘제 수당’ 문구 넣고

무한대 야근에 주말 근무까지

“수당이요? 오후 10시 퇴근이면 1만원이고, 자정을 넘겨 일하면 1만5,000원이에요.”

경기 성남시 판교동 테크노벨리에 위치한 대기업 게임업체에서 근무하는 3년 차 게임개발자 김성근(가명)씨는 매일 오전 10시에 출근한다. 하루 8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한 정상 퇴근 시간은 오후 7시쯤이지만, 김씨는 오후 10시 이전에 퇴근한 기억이 거의 없다. 하루 평균 근무시간은 아무리 짧아도 12시간이다.

김씨는 입사 이후 줄곧 오후 10시를 넘겨 퇴근하면 나오는 택시비 1만원을 자신의 추가 근무 수당이라고 생각해 왔다. 통장에 월급과 함께 나오는 이 택시비를 제외하면 다른 수당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오후 10시에 끝나면 고민이 없다. 오후 11시에 일을 마쳤을 때 고민이 시작된다. “1시간 더 있다가 5,000원을 더 받을지, 그냥 1만원 받고 집에 갈지 고민돼요. 그냥 기다렸다가 12시 맞춰서 집에 가는 경우도 있고요”

야근에 받는 것은 택시비 1만원뿐

작년 말, 김씨가 속한 부서는 게임 출시를 앞두고 ‘크런치 모드’(게임 출시 등 이벤트를 앞두고 야근과 밤샘을 반복하는 근무)에 돌입했다. 혹시 있을지 모를 버그를 찾느라 3일 내내 하루 3시간씩 쪽잠을 자고 퇴근 없이 일했다. 게임업계에서 크런치 모드 3일이면 짧은 편이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이 기간에는 택시비조차 단 한 푼도 못 받았다는 점이다. 퇴근 기록이 있어야 택시비가 나오는데, 퇴근을 안 하니 택시비도 나오지 않았다. 그제서야 김씨는 자신이 받아온 것이 순수 교통비였을 뿐, 회사에서 지급되는 추가근무 수당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같은 팀 동료는 집이 가까워 집에 가서 씻고 2시간을 자고 온 덕분에 1만5,000원이라도 받았다. 하지만 김씨는 밤새 퇴근 없이 사옥에 머무르며, 하루 12시간 일하는 날보다도 손해를 봤다. 그렇게 저녁도, 취미도, 삶도 포기한 채 주 50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의 대가로 받는 연봉은 3,000만원 남짓이다.

김씨가 이렇게 회사에 공짜 야근을 헌납하는 근거는 이른바 포괄임금제다. 근로기준법엔 근거가 없지만 대법원 판례로 인정돼 온 포괄임금제는 상시적인 초과근무가 예상되는 업종에서 일정 금액을 수당으로 추산해 급여로 일괄 지급하는 관행이다. 엄청난 금액도 아닌 약소한 수당을 책정해놓고 무한대 야근, 주말근무를 하는 문화가 만연하다. 노동자 입장에서 추가근무를 거부할 명분이 부족해 보이고, 야근을 당연시하는 사내 문화가 형성돼 있기 십상이라 자연스럽게 장시간 노동이 일상이 된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2016 게임산업종사자 노동환경 실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0.2%가 주 52시간, 6.5%가 주 60시간 넘게 근무했고 연장근로 수당을 지급받지 못했다는 응답은 67.1%에 달했다.

포괄임금제 관행은 산업계에 폭넓게 뿌리내리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2009년 사업체패널 조사)에 따르면 매일 연장근로를 하는 곳의 40.6%가 포괄임금제를 적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조사에서도 100명 이상 사업장의 41.3%가 포괄임금제를 실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영선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은 “일하는 시간이 기형적으로 긴 장시간 노동 구조를 재생산해 온 악질적인 제도 중 하나가 포괄임금제”라며 “포괄임금제 계약으로 연장근로가 합의된 상태라 하더라도 법정 연장근로 한도(주 12시간)를 넘겨 무한대로 일을 시킬 수는 없는데도, 오랜 시간 노동당국의 관리감독 없이 방치돼 인력을 쥐어짜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자리 잡았다”고 지적했다.

정부 감독 없이 포괄임금제 남용

연장근로 시간 산정이 어렵지 않고, 근무시간이 서버에 버젓이 기록되는데도 포괄임금제가 시행되는 경우는 사측이 이를 임금감축 수단으로 악용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5월 국내 게임업체 12곳을 대상으로 기획근로감독을 실시한 결과, 근로자 3,250명 중 2,057명(63.3%)이 주 12시간의 연장근로 한도를 초과해 6시간 더 근무했고, 연장근로 수당 누락, 퇴직금 과소산정 등의 방법으로 직원들에게 미지급한 급여가 44억원에 달했다. 시민단체 ‘노동자의 미래’의 박준도 정책기획팀장은 “기업들이 계약서에 ‘각종 제 수당’이라는 문구 한 줄 넣어두고, 연장근로 수당이 다 포함됐다는 식의 수당 지급 회피기술만 늘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규제 유명무실 특례제도

최대 근로시간 제한 없는 노동자

전체 53%나 해당… 과로로 탈진

“저녁 있는 삶 막는 각종 악법들

이참에 패키지로 손봐야” 지적

연장근로 수당을 안 줘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널리 퍼져 있으니, 휴식으로라도 갚아 준다는 생각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갚긴 뭘 갚고, 쉬긴 뭘 쉬겠어요. 쉬겠다고 했다간 집으로 돌아가서 아주 오래 푹 쉬는 거죠.” 김환민 게임개발자연대 사무국장은 “오후부터 새벽 5시까지 컵라면만 먹고 게임 개발을 하다가 회사 수면실에 가서 잠깐 눈을 붙이고 오전 11시에 일어나 또 일을 반복하는 생활이 빈번한데도, 바짝 일한 만큼 다음에 쉰다는 개념 자체가 없다”며 “한 마디로 노동시간이 ‘부도수표’같은 존재”라고 일갈했다. 당연히 과로와 탈진 문제가 곪아 터져 나온다. 지난해 세상을 버린 tvN 이한빛 PD 사건도 장기간 초과 노동이 불러온 비극이었다.

게임업계 사정에 밝은 한 노무사는 “정부의 관리감독이 없는 틈을 타 기업들이 포괄임금제를 무분별하게 도입하고 이를 ‘노동자 자유이용권’처럼 악용해 장시간 노동, 저임금 구조에 크게 이바지했다”며 “근로기준법상 규정이 아니라 판례로 굳어진 제도다 보니 노조가 소송을 제기해 문제삼지 않는 한 당연시되는 관행을 바꾸기 어렵다”고 말했다.

특례제도 등 패키지로 손봐야

업종에 따라 예외적으로 최대 근로시간 제한을 없앤 근로시간 특례제도도 법정 노동시간 규제를 유명무실화하는 악명 높은 제도다. 본래 취지는 업무 특성상 연장근로 시간이나 휴게시간의 한도를 규제하기 어려운 업종을 특례 업종으로 정한다는 것이었으나 12개 해당 업종에서 일하는 임금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52.9%(2010년 기준)에 달하고 있어 사회 전반의 장시간 노동을 부추긴다. 특례 업종과 포괄임금제는 현장에서 ‘노동자 자유이용권’ ‘인간 무제한 요금제’ 등으로 불린다. 이 노무사는 “이런 악성 제도들이 주 40시간이라는 법정 최대 근로시간을 형해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시 퇴근이 가능하려면 이 같은 제도들을 패키지로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영선 연구위원은 “노동계 곳곳에서 과로사와 과로자살 문제가 터져 나오는 등 장시간 노동의 부작용이 극에 달한 만큼 저녁이 있는 삶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각종 악법들, 즉 포괄임금제, 노동시간 특례업종, 최대 주 68시간 근무를 가능하게 하는 고용노동부의 자의적 행정해석, 반인권적으로 운영되는 성과평가제 등을 함께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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