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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첫 걸음부터 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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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첫 걸음부터 꼬였다

입력
2017.07.13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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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5ㆍ6호기 건설 중단 반대”

노조 일부 주민 실력행사로

한수원 이사회 논의조차 못해

조성희 한국수력원자력본부 이사회 의장이 13일 오후 경북 경주시 한수원 본사 입구에서 이사들의 출입을 저지하고 있는 김병기 노조위원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경주=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조성희 한국수력원자력본부 이사회 의장이 13일 오후 경북 경주시 한수원 본사 입구에서 이사들의 출입을 저지하고 있는 김병기 노조위원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경주=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울산 울주군 서생면에 건설 중인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ㆍ6호기 건설 중단을 둘러싼 갈등이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정부 방침에 따라 건설 일시 중단 여부를 논의하려던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는 13일 건설 중단에 항의하는 한수원 노동조합과 일부 지역주민들의 실력행사에 부딪혀 아예 열리지 못했다. 신고리 5ㆍ6호기 건설 중단 여부는 정부가 추진하는 담대한 탈원전 정책의 첫걸음인데, 시작부터 스텝이 꼬인 것이다.

한수원은 이사회가 무산되면서 ‘신고리 5ㆍ6호기 공론화 기간 중 일시 중단 계획안’이 상정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회의 참석을 위해 경북 경주시 한수원 본사를 방문한 비상임이사들은 건물 로비와 회의실 입구를 점거한 노조에 막혀 발길을 돌렸다.

이날 이사회는 지난달 27일 국무회의가 신고리 5ㆍ6호기 공사를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시민 배심원단이 완전 중단 여부를 판단하도록 결정한 방침에 따라, 한수원에 지시한 공사 일시 중단을 이행할 것인지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한수원이 공기업인 만큼 일시 중단 계획안이 부결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전망이 많았다. 물론 한수원 이사회가 계획안을 의결한다 해도 신고리 5ㆍ6호기가 당장 폐기되는 건 아니다. 이후 3개월 동안 진행될 공론화를 거쳐 나오는 결론을 토대로 정부가 최종 건설 중단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일부 극단적 원전 옹호론과 반대론자들은 한수원 이사회 의결이 마치 정부의 ‘탈원전’ 정책의 성패를 가르는 분수령이라도 되는 양 과격하게 충돌하는 양상이다. 한수원 노조와 일부 주민들은 이날 이사회 개최를 물리적으로 막겠다고 몰려와 한수원 본사에는 온종일 긴장감이 팽팽했고, 앞서 반원전 시민단체들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원자력계를 강력히 규탄하고 핵산업계의 대국민 홍보 중단과 정부의 탈핵 실현을 촉구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 일부 언론까지 가세해 기름을 붓는 바람에 원전찬반 논란은 더욱 격화하고 있다. 가장 실용적이어야 할 논쟁이 ‘탈원전=진보, 원전지지=보수’의 이념대결 구도로 번지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갈등이 실제 이상으로 너무 과열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번 기회에 원전 필요성과 안전성 등에 대해 고민해보려던 시민들이나 합리적 해결책을 모색하려던 전문가들은 양극단의 공격을 받을까 우려해 입을 다무는 모습이다.

극한 갈등의 빌미는 정부가 제공했다. 지난달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탈핵’을 선언할 때만해도 지지 의견이 많았다. 더 이상 원전을 짓지 않겠다는 건 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공정이 30%이상 진행된 신고리 5,6호기까지 공론화를 이유로 공사 중단을 지시하면서 원전옹호 진영의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탈원전 방향은 분명히 옳다. 하지만 서둘거나 일방적으로 몰아붙이지만 말고 반대 의견을 진지하게 들으며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면서 “정부가 구체적 대안에 대한 설명 없이 원전과 석탄발전의 비중을 동시에 줄이겠다고 나서면서 문제가 너무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애초 정부가 탈핵을 선언하면서 ▦원전 축소에 따른 구체적 전력수급 계획과 전기료 상승 전망치 ▦원전을 대체할 신재생에너지 확대 전략 ▦비발전 원자력 분야 원천기술 및 응용기술 육성대책 등 보다 섬세한 대안을 함께 내놓았다면 지금처럼 원전찬반 논란이 이념대결처럼 흐르는 것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얘기다. 한 관계자는 “수십 년간 육성해온 원전에 대해 정교한 출구전략 없이 탈핵을 선언하고 공사까지 중단시키면서 반발이 커지게 됐다”고 말했다.

장기 전력수급계획수립 과정 논의 투명화도 중요하다. 한국원자력학회장 황주호 경희대 교수는 “신고리 5ㆍ6호기 공론화 결론이 연말에 나올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7~2031년)과 배치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공론화 결과 ‘신고리 5ㆍ6호기 건설을 최종 중단하라’고 정부에 권고했는데, 8차 계획에선 탈석탄 기조를 감안한 전력수요 등을 고려할 때 신고리 5ㆍ6호기를 가동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사회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공론화 활동을 신고리 5ㆍ6호기 건설 지속 여부뿐 아니라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전체로 확대하자고 제안한다. 지금까지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소수 전문가가 비공개 회의를 통해 만들어온 탓에 ‘밀실 논의’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 같은 소통 부족이 결국 에너지 정책 전반에 대한 불신과 이념논쟁으로 비화할 만큼 극한 대립을 낳았다는 분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교수는 “중립적, 과학적이어야 할 에너지 정책이 과도하게 정치화하고 있다”며 “이념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구체적 대안을 놓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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