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수수ㆍ돈세탁 혐의 등 인정
법원, 징역 9년 6개월 선고
형 확정 땐 내년 대선 출마 못해
브라질 좌파 ‘영웅’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도에 먹구름이 끼었다. 법원이 부패 혐의로 룰라 전 대통령에게 끝내 실형을 선고하면서 내년 말 예정된 대선 출마가 불투명해졌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법원은 12일(현지시간) 좌파 노동자당(PT) 소속인 룰라 전 대통령에게 뇌물수수와 돈세탁 등의 죄를 물어 징역 9년 6개월을 선고했다. 세르지우 모루 연방판사는 룰라와 부인이 2009년 상파울루주 과르자시의 복층 아파트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건설업체 OAS로부터 370만헤알(13억1,000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았다고 판결했다. 해당 뇌물은 OAS가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와 좋은 조건으로 계약하는 데 힘을 써준 대가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룰라 전 대통령은 즉각 항소 방침을 밝혀 구속은 피했다. 그러나 형이 확정되면 형량의 두 배 기간 공직 취임을 금지하는 규정에 막혀 내년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그는 다른 4건의 부패 혐의도 받고 있다. 좌파진영의 대선 후보로 유력한 룰라는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30% 안팎의 지지율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룰라 측은 “결백을 입증하는 증거는 채택되지 않았다. 룰라는 정치적 수사의 희생양”이라고 비판했다.
1980년대 노동운동을 이끌면서 브라질 좌파의 구심점이 된 룰라는 3전4기 끝에 2002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8년 재임 동안 고유가 호황에 힘입어 각종 복지정책을 통해 브라질 국민 수백만명을 빈곤에서 탈출시켰다. 이런 공로 덕분에 퇴임 시 지지율은 무려 87%에 달했을 정도다.
하지만 룰라 역시 부패의 덫을 비껴가지 못했다. 2014년 모루 판사가 주도한 부패 수사, 이른바 ‘세차 작전(Operation Car Wash)’이 시작되면서 룰라 본인은 물론, 측근들이 줄줄이 걸려들었다. 주로 페트로브라스와 OAS, 오데브레시 등 대형 건설사 간 수주 편의 등을 대가로 정치인들에게 거액을 제공한 것이 핵심이다. 뇌물 규모는 수조원을 상회할 만큼 브라질 역사상 최악의 부패 스캔들로 비화했고, 지난해 8월 룰라의 후계자인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다.
지금까지 브라질 국민은 대체로 사법부의 성역 없는 수사에 박수를 보냈으나 룰라의 대중적 인기 때문인지 유죄 판결 이후 여론은 급격하게 양분되고 있다. 좌파단체들은 “모루 판사가 통화 내용 등 수사 자료를 언론에 흘리는 식으로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또 호세프 전 대통령을 몰아내고 취임한 우파 브라질민주운동당(PMDB)의 미셰우 테메르 현 대통령마저 육가공업체 JBS에게서 130억원이 넘는 돈을 받거나 뇌물을 제공받기로 한 혐의로 기소돼 브라질은 1년 사이 수장이 3번이나 바뀔 위기에 처해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룰라에게 유죄가 선고된 자체만으로 파급력이 엄청나다”며 브라질의 정치적 불안정성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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