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이 관능미를 지우고 ‘색깔’을 앞세우고 있다. ‘빨간 맛’을 노래하는 걸그룹 레드벨벳, 앨범 제목을 ‘퍼플’이라고 지은 마마무 등 저마다 자신들의 음악을 표현할 수단으로 색깔을 활용하고 있다. 여름철마다 쏟아지던 섹시 콘셉트가 식상해지면서, 걸그룹이 컬러 콘셉트를 선보여 자신만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시각적인 효과까지 누리고 있다.
마마무는 아이돌 가수의 발랄한 이미지와 함께 실력파 뮤지션의 면모를 드러낼 색깔로 보라색을 정했다. 마마무의 멤버 휘인은 지난 3월 열린 새 앨범 쇼케이스에서 “분홍은 화사하고 발랄함을 담고 있고, 파랑은 깊이 있고 진한 음악성을 담고 있다”며 “두 색깔이 어우러진 보라색과 같은 음악을 선보이겠다”고 설명했다. 보라색이라는 상징성이 생기니 마마무가 이번 앨범에서 추구하는 음악관과 그룹의 정체성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마마무 소속사 이제컴퍼니의 한 관계자는 “음악을 색깔로 표현하니 시각적인 효과가 극대화된다”며 “여름이 오면서 여성 가수들이 저마다 알록달록한 색깔을 더욱 활용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걸그룹 블랙핑크, 레드벨벳은 아예 그룹명에 색깔의 이름을 넣었다. 사랑스러우면서도 ‘쿨’한 느낌을 주고 싶어서나(블랙핑크), 강렬한 레드 콘셉트와 부드러운 벨벳 콘셉트를 앞세워 활동하기 위해서(레드벨벳) 등 이유는 각각이다. 이름으로 구축한 음악적 정체성은 앨범 제작 과정에 그대로 반영된다.
블랙핑크는 22일 발매한 ‘마지막처럼’을 그룹의 대표 색깔인 분홍색으로 꾸몄다. 앨범 자켓과 뮤직비디오 속 세트장 역시 파스텔 톤이 가미된 분홍색이다. 레드벨벳은 딸기의 맛을 표현한 신곡 ‘빨간 맛’으로 강렬하면서도 시원한 이미지를 구축했다. 아이돌 뿐만이 아니라 솔로가수에게도 ‘컬러 콘셉트’는 좋은 표현 수단이 된다. 가수 이효리는 앨범 이름을 ‘블랙’으로 정했고, 지난 4월 활동한 가수 아이유는 정규 4집 앨범 타이틀곡 ‘팔레트’에서 스물다섯 살의 다양한 생각들을 팔레트에 비유했다.
2~3년 전부터 관능미를 부각한 섹시 콘셉트가 더 이상 대중을 어필하지 못하고 청순과 순수를 포장한 그룹까지 쏟아지는 상황에서, 걸그룹이 노출 없이 대중의 눈길을 끌기 위한 수단으로 색깔을 활용하고 있다. 컬러 콘셉트를 반복하면 각인 효과를 줘 해당 그룹만의 고유의 이미지를 갖게 한다. 김반야 대중음악평론가는 “요즘 가요계에 비슷한 콘셉트가 너무 많은데, 색깔을 콘셉트로 잡으면 다른 걸그룹과 이미지, 장르적으로 더 명확하게 구분이 된다”고 말했다.
섹시, 순수, 귀여움 등 기존 흥행 도식이 의미가 없어지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움직임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는 “(요즘 아이돌 가수는) 여성성을 어필하는 것이 아니라 그룹의 개성, 무대의 완성도에 중점을 둔다”며 “대중이 걸그룹에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고 새롭게 보여줄 수 있는 아이디어들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김반야 평론가는 “건강하고 활기찬 음악이 유행하면서 컬러 콘셉트가 더욱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며 “아이돌 가수들의 컴백이 몰리는 올 8월에도 컬러 콘셉트, 치어리더 콘셉트 등 여름을 겨냥한 독특한 이미지들을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