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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사진관 “블라인드 채용, 이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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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사진관 “블라인드 채용, 이의 있습니다”

입력
2017.07.13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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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 이력서 사진 금지

“증명사진 비중이 70%인데…”

사양길 업계 엎친 데 덮친 격

“한평생 경력이 이제는 족쇄”

협회 “이대로 가면 대규모 집회”

한국프로사진협회 회원들이 13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력서 사진 부착을 금지하는 블라인드 채용 추진방안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한국프로사진협회 회원들이 13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력서 사진 부착을 금지하는 블라인드 채용 추진방안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몽땅 다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습니다.”

13일 오전 한국프로사진협회 소속 사진가 50여명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에 위치한 광화문1번가 앞에 섰다. 사진관을 지켜야 할 시간에 영업도 포기하고 거리로 나선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요구한 건 이력서에 사진 부착을 금지하는 ‘블라인드 채용’ 철회. 지난달 22일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하반기부터 공무원∙공공부문 채용 시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해야 한다”고 지시했고, 5일 고용노동부 등 관계 부처는 ‘평등한 기회∙공정한 과정을 위한 블라인드 채용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출신지역, 학력, 가족관계 등 정보를 요구하지 않는 대신 직무수행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평가하겠다는 의도다. 오롯이 실력으로 경쟁하는, 공정한 사회가 온다는 국민들 기대감도 커졌다.

그러나 사진사들에겐 날벼락이었다. 디지털카메라와 스마트폰 보급으로 진작 사양길에 접어든 사진업계에 증명사진은 거의 유일한 안정적 수입원이나 다름 없다. 다른 사진은 몰라도 공문서나 취업에 활용되는 사진만큼은 전문가 손길을 거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5명 중 3명은 증명사진으로 먹고 산다”(이재범 비상대책위원장)지만 사실 그마저도 넉넉지는 않다. 경남 진주에서 조그만 사진관을 운영하는 39년 경력 최관침(56)씨는 “하루에 증명사진 촬영 건수가 서너 건(건당 1만원)에 불과하다”며 “낮에 사진관을 운영하고 밤에 대리운전을 하는 친구들도 있다”고 했다.

대학가 사진관들은 시름이 더 깊다. 서울 이화여대 인근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A씨는 “증명사진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 매출) 70% 수준”이라며 “공기업에서 사진 부착을 금지하다가 나중에 사기업까지 확대 시행하면 (사진관이 아닌)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신촌역에 가게가 있는 B씨는 “취업용 사진은 이목구비뿐 아니라 헤어, 메이크업까지 보정을 해야 해 일반 증명사진보다 공을 들여야 한다. 취업준비생들의 절박한 심정을 아는 만큼 더 열심히 작업하곤 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마땅한 탈출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른 주수입원인 결혼사진이나 아기사진(백일, 돌 기념 등)도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이다. 수준급 셀프 촬영을 해내는 젊은 층 실력은 전문가 뺨친다. 주요 이벤트가 있을 때면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사진을 찍고, 인화해 거실 액자에 걸어두던 전통도 옅어진 지 오래다. 이 위원장은 “해마다 쪼그라드는 매출 앞에 수십 년 경력이 무슨 소용이냐”며 “사진기와 함께 살아온 평생이 ‘자랑거리가 아니라 족쇄’라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반려동물 전용사진관 등 특화로 나름 살길을 모색하는 이도 있지만 극히 일부 얘기다. 상당수는 근근이 버티거나 폐업을 선택한다. 10년 전 3만명 규모던 협회 회원은 4분의 1 수준(8,000여명)으로 줄었다. 박동철(59)씨는 “아들이 사진관을 이어받겠다며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해 올해부터 이 길로 접어들었는데,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한다는 얘기가 나오자 무심결에 ‘괜히 했다’고 말하더라”며 “아버지로서 말리지 못하고 몹쓸 짓을 시켰다는 생각에 얼굴을 들 수 없다”고 했다.

협회는 관련 부처에 면담을 신청해뒀다. “요구가 반영되지 않으면 부득이 대규모 집회를 열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서울 마포구 망원동을 40년 간 지켜왔으나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3월 문을 닫은 '행운의 스튜디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마포구 망원동을 40년 간 지켜왔으나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3월 문을 닫은 '행운의 스튜디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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