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현지 르포
월급 절반 이상 압류… 핵 개발 비용 충당
일상생활도 엄격 통제 “노예 상황 다름 없어”
“빠르고 저임금이면서도 솜씨는 믿을 만하다. 러시아 인부들보다 훨씬 낫다. 아침부터 밤까지 오로지 일만 한다.”
러시아 극동지역 블라디보스토크에 거주하는 주부 율리아 크라브첸코(32)는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출신 페인트공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고용주한테는 대환영일 수밖에 없는 이들의 ‘근무 태도’는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세습독재 국가로의 막대한 현금 유입으로 이어졌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를 이겨내고 북한이 미국 본토 타격까지 가능한 핵무기 개발을 눈앞에 두게 된 비결인 것이다.
지난 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에 성공한 북한의 핵 무장 관련 자금 출처에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11일(현지시간) NYT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현지 르포를 통해 ‘달러 벌이’에 나선 북한 건설 노동자들의 실태를 집중 조명했다. 보도에 따르면 북한 정부는 대북 제재 강화로 어려움을 겪자 중국과 중동, 아프리카 등은 물론, 최근에는 구 소비에트 연방 지역으로 노동자들을 대거 보내고 있다. 러시아로 파견된 북한 노동자는 최대 5만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현지 업체들은 북한 노동자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블라디보스토크의 한 건설회사는 홈페이지에서 “놀라울 만큼, 열심히 일하고 질서정연하다. 휴식 시간이 길지 않고, 담배를 피우려고 자주 나가지도 않는다. 직무태만도 없다”고 소개하고 있다. 주택 개ㆍ보수 수요가 많은 이 지역에서의 활동이 가장 눈에 띄지만, 북한 노동자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월드컵 축구 경기장, 모스크바의 호화 아파트단지 등 건설 현장에도 진출해 있다.
그러나 이들의 처지는 “기본적으로 노예 상황”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임금의 대부분이 정부에 의해 몰수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삼림벌채 노동자들은 월급의 80%, 건설 노동자들은 30% 정도를 각각 빼앗긴다. 북한인 수십명을 고용 중인 한 업체 대표는 “지난 10년 사이 북한 정부에 압류되는 급여가 크게 늘었다”며 “2006년 매월 1만7,000루블(280달러 상당) 정도에서 지금은 5만 루블(841달러)에 이른다”고 말했다. 가장 비싼 임금을 받는 북한 노동자의 경우, 월급의 절반 이상을 북한 정부에 상납한다고도 했다. 이 신문은 “북한 정부가 러시아 파견 노동자들한테서 벌어들이는 외화 수입이 연간 1억 2,000만달러(1,382억원) 정도로 추산된다”는 국내 한 북한인권단체의 지난해 발표를 인용하기도 했다.
이들 북한 노동자는 탈북을 막기 위해 마련된 블라디보스톡 외곽의 비좁은 기숙사에서 강제로 ‘공동 생활’을 하고 있다. 현지 러시아인이나 다른 외국인과의 접촉도 금지돼 있다. 러시아 현지에서조차 북한 당국의 엄격한 통제를 받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 북한 주민들은 ‘러시아 파견’을 강력히 원하고 있다. 공무원에게 뇌물을 줘서라도 오고 싶어할 정도다. ‘디마(Dima)’라는 현지 이름을 쓰는 한 50대 남성은 “5년 동안 러시아에 두 번 왔는데 내년에 노동허가(work permit) 만료로 북한에 돌아가야 한다”며 “하지만 다시 돌아오고 싶다”고 했다. 외부 시선으로는 ‘노예’처럼 보이지만, 어쨌든 북한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돈과 자유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평양 근무 경험이 있는 한 전직 러시아 외교관은 “(북한인 본인한테는) 노예가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것이며, 북한에서의 삶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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