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는 북한 붕괴 아닌 대화 위한 것
무용론 주장 앞서 제대로 실행해 봐야
대화ㆍ압박 병행 아닌 제재→대화 수순
문재인 대통령의 첫 다자외교 무대였던 독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는 우리 정부의 대북기조를 세계에 알리는 좋은 기회였다. 미중의 고공플레이에 묻혔던 목소리를 되찾고, 대북 국제공조에서 합당한 우리의 권리ㆍ의무를 환기한 것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가 문 대통령의 한반도 구상을 납득했느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당장 대북 평화기조를 설파한 쾨르버 재단 연설이 끝나자 재단 관계자는 “군사대응까지 거론되는 마당인데 적절한 제안인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가 달라진 것 아닌가”고 물었다. 문 대통령의 제의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다.
형식적으로 보면 대화와 압박 병행은 대화만 고집했던 과거 진보정권보다 진일보했다. 압박의 필요성을 인정했다는 것은 대북 인식에서 어느 정도 균형 감각을 찾았다는 얘기다. 문제는 대화와 압박을 조합하는 방식이다. 문 대통령은 쾨르버 재단 연설에서는 남북교류와 협상을 강조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으나 곧 이어 열린 한미일 정상 만찬에서는 대화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고 강력한 압박만을 강조했다. 미국과 일본의 강력한 입장에 호응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었겠으나 과연 문 대통령의 진의가 무엇이냐는 점에서는 혼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잘못을 저지른 아이를 궁극적으로는 보듬고 끌어안아야 하겠지만 이는 아이가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친 다음의 일이다. 아이가 뉘우치기는커녕 잘못된 행동을 계속 반복하는 데도 사탕으로 무마하려는 것은 버릇만 더 나빠지게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제재 망국론’이다. 북한에 제재를 가하는 것을 북한 정권붕괴 시도로 몰아가고, 더 나아가 ‘전쟁하자는 것이냐’는 논리로 제재를 반대하는 주장이다. 북한을 제재하는 목적은 너무나 명확하다. 제대로 된 대화를 하자는 것이다. 잘못된 행동에 대해 벌 없이 당근만 준 지금까지의 대화법이 북한의 버릇만 더 나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의 궁극적 해법이 대화여야 한다는 것은 우리나 미국이나 중국이나 다를 바 없다. 북한의 잘못을 바로잡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만들기 위한 제재를 북한정권 전복 시도로 몰고 가는 것은 북한을 비호하기 위한 궤변일 뿐이다. 미국과 한국은 북한정권 붕괴 의도가 없고, 침략할 의사가 없으며 통일을 인위적으로 할 생각도 없다는 뜻을 수차례 밝힌 바 있다. 다 떠나서 지금 시대에 북한에 친미 괴뢰정권을 세운다는 게 말이 되는가. 서울과 수도권이 북한의 장사정포 공격으로 첫날에만 30여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다는 전쟁위기설을 퍼뜨리는 것은 그래서 사태를 호도하는 매우 무책임한 발상이다. 제재에서 북한 붕괴ㆍ전쟁까지의 거리는 대화에서 제재까지의 거리보다 몇 십배, 몇 백배 더 멀다.
제재를 해서 지금까지 뭘 얻었느냐는 말도 한다. 제재 일변도의 강경책이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를 위한 시간만 벌어줬다는 주장이다. 그러면 역으로 먼저 물어야 할 게 있다. 제대로 된 제재를 한번이라도 한 적이 있는가. 1990년대 이후 20년이 훨씬 넘는 북핵 위기 정국에서 국제사회가 진지하게 제재조치를 내놓은 건 지난해 1월 4차 핵실험 이후가 사실상 처음이다. 지금까지 모두 일곱 번의 안보리 결의 중 이때의 결의 2270호와 지난해 9월 5차 핵실험 이후 채택된 결의 2321호가 제재의 모양이라도 갖춘 결의의 전부다. 그나마 이마저도 북한정권 붕괴 우려 운운하며 반대하는 중국 때문에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다. 중국에 북한의 압박을 강제하는 역대 최고 수위의 결의라고 했지만 올해 1~5월 북중 무역은 지난해보다 오히려 늘었다. 이래 놓고 ‘제재무용론’을 말하는 건 언어도단이다.
한사코 대북제재에 반대하는 중국을 설득하는 것이 힘든 일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일의 선후를 뒤바꾸는 것은 결코 올바른 해법이 될 수 없다. 지금은 섣불리 대화를 언급할게 아니라 제재를 위한 공조에 온 힘을 쏟아야 할 때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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