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각종 장부ㆍPC 등 확보
관련법 위반 여부 조사
기사 채용 인건비 부담 탓에
4시간 운전ㆍ30분 휴식 무시
“차로이탈 경고장치 의무화”
문 대통령 국무회의서 결정
경찰이 11일 경부고속도로 졸음운전 사망 사고를 일으킨 광역버스가 속한 버스업체를 압수수색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졸음운전 예방 장치 의무화 검토를 지시했고, 국토교통부는 전국 200여 버스업체에 대한 특별안전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서울경찰청 교통범죄수사팀은 이날 수사관 5명을 급파, 경기 오산시 버스업체 사무실에서 각종 장부와 PC 등을 압수했다. 사건 조사는 일선 서가 맡지만 업체 수사는 지방청이 직접 나선 것이다. 수사 초점은 버스 업체의 관련 법 위반 여부. 과로와 졸음운전을 막기 위한 버스기사 휴식 보장, 음주 무면허 등에 대한 의무사항 준수, 차량 검사와 정비 상태 등이다.
관련 법은 지난해 7월 사상자 42명이 발생한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 5중 추돌 사고 이후 강화됐다. 올 2월 개정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은 버스의 경우 1일 운행 종료 후 연속 휴식시간 8시간 보장, 1회 운행 후 10분 이상(시외ㆍ고속ㆍ전세는 15분 이상) 휴게시간 부여, 4시간 연속 운전 뒤 최소 30분 휴식 등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 가해자인 버스운전사 김모(51)씨는 사고 전날 오전 5시부터 16시간 동안 운전대를 잡고 오후 11시가 넘어서 퇴근한 뒤 사고 당일인 9일 오전 7시15분부터 1회 왕복 100㎞가 넘는 구간을 세 차례 운행하던 중 사고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귀가 시간 등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5시간도 채 자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최근 석 달 동안 하루 평균 16시간씩 운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사실은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이 입수한 김씨 근무일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현재까지 있는 규정도 지키지 않은 안전 참사로 보이지만, 규정을 어긴 게 확인되더라도 처벌은 최대 90일 사업정지 또는 과징금 180만원 부과에 그친다. 졸음운전 사고가 잇따르자 관련 대책을 만들었지만 정작 현장에서 체감했을 처벌 수위는 미미했던 것이다. 자동차노련은 “법만 만들어놓고 그 흔한 관련 기관 점검조차 없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버스기사 과실 여부도 살펴볼 예정이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졸음운전 대신 “깜빡 정신을 잃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있으나마나 한 관련 규정에 버스기사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알려지자 정부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날 문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는 버스나 화물차에 ‘차로 이탈경고장치(LDWS)’ 장착을 의무화하는 내용 등을 담은 ‘교통안전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이 통과됐다. LDWS는 졸음운전 등으로 차량이 차로를 벗어나는 상황을 운전자에게 경고음으로 알리는 장치다.
졸음운전 예방 역할을 하는 ‘전방추돌 경고장치(FCWS)’ 장착 의무화도 추진하기로 했다. 문 대통령은 관련 아이디어가 나오자 "예산이 좀 들어도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 관한 일이라면 하는 방향으로 추진해보자"고 말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국토부는 한 달 동안 전국 모든 버스업체에 대한 특별안전점검을 할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1일 2교대제 도입도 졸음운전 방지 대책으로 꼽고 있다. 버스업체들은 비용 절감 유혹에 빠지기 쉽고 운전기사들은 근로기준법(하루 8시간, 주 40시간 노동) 적용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설재훈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방자치단체가 버스업체 손실을 보전해주는 준공영제가 도입된 서울시는 1일 2교대제가 운영돼 운전자가 잠을 못 자서 집중력 저하로 사고를 내는 일이 없다”며 “서울 버스 사고 발생률은 경기도의 절반도 안 된다”고 설명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김기중 기자 k2j@hankookilbo.com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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