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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오디세이] 조승우의 얼굴은 언제나 새롭다

입력
2017.07.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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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비밀의 숲'의 황시목(조승우)은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지만, 강력계 형사 한여진(배두나) 앞에서는 표정이 풀어진다. tvN 방송화면 캡처
tvN 드라마 '비밀의 숲'의 황시목(조승우)은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지만, 강력계 형사 한여진(배두나) 앞에서는 표정이 풀어진다. tvN 방송화면 캡처

미세한 표정만으로 인물 표현

열정과 냉정 동시에 지닌 배우

뮤지컬서 ‘조드윅’ 신드롬 불러

3년 만에 TV서 또 다른 모습

손짓 하나도 치밀하게 계산해

“40, 50대엔 어떤 연기 선보일지”

얼굴은 무표정이고 말투는 싸늘하다. 냉랭한 성격이라 회사에선 늘 외톨이다. 어린 시절 뇌수술 후 감정을 잃어 버린 서부지검 황시목 검사(조승우)는 늘 이성과 합리를 바탕으로 한 판단으로 자기 자신에게마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짜증날 땐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미세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웃을 줄도 안다. 용산경찰서 강력계 경위 한여진(배두나)은 황시목의 미세한 감정 변화를 유일하게 포착해 낸다. 한여진과 사건을 풀어 가며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 황시목은 어색하게나마 농담까지 주고받으며 의외의 인간미를 드러낸다.

단조롭고 평면적으로 그려질 만한 캐릭터지만, tvN 드라마 ‘비밀의 숲’ 속 황시목은 묘하게 정이 간다. 배우 조승우는 눈빛, 손짓 하나까지 고민하고 표현해 시청자의 몰입을 이끌어 냈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는 작은 표정 변화에도 시청자는 열광했다. 뮤지컬 무대와 스크린, 안방극장을 가로지르며 맹활약하는 배우는 그렇게 다시 한번 다채로운 연기 스펙트럼을 펼쳐내고 있다.

2014년 뮤지컬 '헤드윅'에서 헤드윅 역을 맡은 배우 조승우가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4년 뮤지컬 '헤드윅'에서 헤드윅 역을 맡은 배우 조승우가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드라마로 돌아온 뮤지컬 스타

연기에 있어 조승우는 두 얼굴의 사나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선 얼음 같은 열정이 어린 연기를 주로 선보이고, 뮤지컬 무대에선 뜨거운 냉기를 내뿜는다. 전혀 다른 결의 연기를 다른 매체를 통해 선보이며 사랑받고 있다.

조승우는 영화 ‘춘향뎐’(2000)으로 데뷔했지만 뮤지컬을 발판 삼아 스타로 발돋움했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2004)로 조승우 신드롬을 빚어냈고, ‘헤드윅’(2005)으로 ‘조드윅(조승우의 헤드윅)’이라는 조어를 만들어 내며 무대에서의 입지를 다졌다. 조승우를 앞세운 두 뮤지컬은 무대에 불황의 그늘이 드리울 때마다 10주년, 15주년 등의 수식을 달고 공연되는 단골 레퍼토리다. 등장인물의 감정을 온전히 담아낸, 조승우의 뜨거운 노래가 강한 흡입력을 발휘하며 매번 관객몰이에 성공했다.

높은 뮤지컬 출연료를 두고 공연계가 떠들썩해질 정도이지만 그는 무대에 안주하지 않고 있다. SBS ‘신의 선물-14일’(2014) 이후 3년 만에 택한 드라마 ‘비밀의 숲’ 출연도 새로운 역할, 신선한 연기를 좇아온 그의 이력에서 비롯됐다. 조승우는 5월 열린 ‘비밀의 숲’ 제작발표회에서 “10주년, 15주년 뮤지컬 공연을 펼치다 보니 스스로 과잉된 감정을 소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비밀의 숲’의 소재현 PD는 “조승우에게 지난해 8월쯤 대본을 줬는데, 2주 만에 수락해 놀랐다”며 “미세한 표정만으로 표현해야 하는 캐릭터에 신선함을 느꼈다고 했다”고 말했다.

조승우는 황시목을 대본대로 연기하기보다, 재해석해 새로운 캐릭터를 빚어냈다. 다른 배우들의 대사까지 달달 외우며 대본을 익힌 후, 제스처를 연습하며 그만의 캐릭터를 구축했다. 소 PD에 따르면,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황시목의 감정에 집중하기 위해 외부 활동마저 자제했을 정도다. 그는 지난해 말 제작진과 배우들이 한데 모이는 송년회도 불참했다.

황시목은 무미건조한 인물이지만 생동감이 있었다. 조승우는 뮤지컬을 통해 다듬은 발음으로 대사 전달력을 높였고, 손짓, 눈빛, 눈썹의 움직임까지 세밀하게 연기해 내면의 변화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뮤지컬 배우는 브라운관에서 자칫 과장된 연기를 펼칠 수 있는데, 조승우는 뮤지컬과 영상 연기 스타일이 구분돼 있고 매체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며 “‘비밀의 숲’에선 절제된 연기를 선보이는데도 무대 위에서 뿜어내던 에너지가 느껴진다”고 평가했다.

배우 조승우는 영화 '말아톤'에서 자폐증을 앓는 20세 청년 초원이를 연기했다. 영화사 제공
배우 조승우는 영화 '말아톤'에서 자폐증을 앓는 20세 청년 초원이를 연기했다. 영화사 제공

한계 없는 연기 스펙트럼

조승우는 그동안 “영상 매체보다 뮤지컬 무대가 더 좋다”는 생각을 솔직하게 밝혀왔다. 뮤지컬 배우는, 누나 조서연이 출연한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를 중학교 시절 보면서부터 키웠던 꿈이다. 원종원 뮤지컬 평론가는 “조승우는 자신의 얼굴이 어느 각도에서 관객에게 어떤 잔상을 남기는지, 무대 위 동선과 몸짓을 치밀하게 계산한다”며 “조승우의 작은 손짓 하나에 관객이 환호하는 응집력을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충무로에선 늘 꽃길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말아톤’(2005), ‘타짜’(2006) 같은 흥행작을 남기기도 했으나, 흥행에 실패한 작품도 적지 않다. 무대 위에서 폭발하는 에너지와 특유의 카리스마가 연출의 힘이 큰 영상 작품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비밀의 숲’과 영화 ‘암살’(2015), ‘내부자들’(2015)에 등장한 조승우는 사뭇 다르다. 원 평론가는 “조승우가 영상 매체에서 자신의 장점을 살리는 법을 터득해 영상 쪽에서도 파괴력을 키워가고 있다”며 “자신이 구축한 스타일을 그대로 답습하는 게 아니라, 계속 연구하고 개발하니 연기가 늘 새롭다”고 분석했다.

충무로에선 부침을 겪었다고 하나,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며 그만의 영역을 구축했다. 그는 내년 개봉하는 영화 ‘명당’에서 관상감 지관 박재상 역을 맡아 ‘암살’이후 3년 만에 충무로로 복귀한다. 세 차례나 출연을 고사한 조승우를 설득해 캐스팅에 성공한 ‘내부자들’의 우민호 감독은 “조승우가 무대 경험이 많아서인지, 즉흥적이고 순발력 있게 연기하더라”며 “영화 속 우장훈(조승우)은 서울말 쓰는 경상도 출신 검사인데, 조승우가 감정이 격해질 때마다 사투리를 써서 입체감을 살렸다”고 말했다. 우 감독은 “매번 다른 연기를 선보이니 40대, 50대엔 어떤 연기를 펼칠지, 미래가 가장 궁금해지는 배우”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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