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
삼성합병 관련 청탁 추궁에
“변호인 조언에 따라 증언 거부”
안종범 수첩 증거능력 부정 의도
“특검 공격 적절히 차단” 평가와
“유리한 상황은 아냐” 분석 교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뇌물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섰지만 예상대로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팀 질문에 진술을 거부했다. 박 전 대통령 독대 당시 청탁이 있었는지 집중 추궁하려던 검찰과 특검에 ‘법 테두리’ 안에서 취할 수 있는 회피 전략으로 맞선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김세윤) 심리로 이날 열린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이 부회장과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은 모두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 검찰과 특검은 박 전 대통령 3차 독대 당일인 지난해 2월 15일부터 17일까지 이 부회장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문자나 전화통화를 주고받은 내역이 19건 확인된다며 그 내용을 여러 차례 물었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독대를 마친 다음날 오전 최 회장과 4분25초간 통화한 내역도 보여줬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변호인들의 강력한 조언에 따라 증언을 못할 것 같다”고 밝혔다. 변호인 조언을 진술 거부 이유로 들었지만, 실제로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지난달 최 회장이 증인 신분으로 법정에 나와 박 전 대통령 독대 당시 그룹 현안 관련 청탁 정황을 ‘일부’ 인정한 점도 이 부회장이 진술거부권을 행사한 이유로 꼽힌다. 독대와 관련해 검찰과 특검 질문에 뭐라도 답하게 되면 혹여 꼬투리가 잡힐 가능성을 아예 차단하겠다는 뜻이다. 진술거부권이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근간을 두고 있는 합법적인 방어 전략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 측은 진술거부 전략과 함께 핵심 물증으로 지목된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전략도 동시에 취하고 있다. 특검은 박 전 대통령 지시가 담긴 안종범 수첩을 근거로 삼성 측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등 당시 그룹 현안과 관련해 박 전 대통령에게 광범위하게 청탁을 해온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부회장 측은 이에 대해 수첩에 적힌 내용을 두고 특검과 다투기보다 수첩 자체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수첩은 독대 자리에 없었던 안 전 수석이 작성한 것으로, 박 전 대통령이 독대 상황을 안 전 수석에게 전달하면서 필연적으로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가 수첩을 직접증거가 아닌 ‘정황증거’(간접증거)로 채택한 것을 두고 이 부회장 측은 유리한 국면이 조성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진술거부와 증거능력 부정이라는 이 부회장 측 두 가지 전략이 재판에 미칠 영향에 대해선 법조계 전망이 엇갈린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뇌물 사건은 보통 당사자들이 혐의를 부인하기 때문에 보통 직접증거보다는 수첩 등과 같은 정황증거를 놓고 유ㆍ무죄를 판단한다”며 “수첩이 직접증거로 채택이 안 됐다고 이 부회장에게 반드시 유리한 상황은 아니다”고 분석했다. 반면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특검 입장에선 정황증거를 뒷받침 할 수 있는 유의미한 진술을 이끌어내는 게 관건인데, 이 부회장과 삼성 임원들이 진술거부권을 행사해 특검 공격을 적절히 차단했다”고 평가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