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채택 거부에 검찰 반발
원세훈 결심공판 24일로 연기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파기환송 결심(結審)이 늦춰졌다. 2년 만에 마무리될 것으로 보였던 이번 사건은 공판 당일 공개된 증거의 채택 여부 공방이 벌어지면서 결심을 24일로 미루게 됐다.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 김대웅) 심리로 재판이 열린 10일은 심리전단국 직원을 동원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댓글을 남기는 등 여론 조작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원 전 원장에 대해 검찰이 구형을 하고, 변론을 종결하는 날이었다.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를 인정해 징역 및 자격정지 3년을 선고한 2심을 깨고 대법원이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지 2년 만이다.
그런데 이날 오전 한 언론에서 2011년 11월 국정원에서 작성한 ‘SNS 선거 영향력 진단 및 고려사항’ 문건을 보도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검찰은 오후 재판 시작과 동시에 “해당 문건이 2011~2012년 국정원의 조직적 트위터 활동 배경을 규명할 수 있는 직접적 증거”라고 주장했다. 국정원이 2011년 11월 작성한 A4용지 5쪽 분량의 보고서는 19대 국회의원 선거 및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 여당이 SNS를 장악할 수 있는 대책과 방안 등이 담겨있다.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정무수석실에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통령에 보고됐다면 당연히 원 전 원장에게 보고가 됐을 것이고, 이는 그간 심리전단국의 SNS 활동을 몰랐다고 주장한 원 전 원장 입장과 정면 배치된다는 게 검찰 논리다.
원 전 원장 변호인 측은 즉각 반발했다. “파기환송심이 2년에 이르는데 이제 와서 언론 기사를 근거로 다시 증거를 신청하는 게 매우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 변호인도 “재판 지연은 형사소송법 제1원칙인 신속성과 효율성 원칙에 반한다”고 거들었다. 검찰의 공세를 예상치 못한 듯 피고인석에 앉은 원 전 원장 낯빛은 어두워졌다.
신속한 재판 종결 의지를 밝혀 온 재판부가 검토 끝에 증거 채택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검찰이 계속 이의를 제기하며 항의하자 재판부는 “지금까지 제출된 증거만으로 실체 규명에 충분하다”고 다독이는 한편, 변론기일을 한 번 더 열기로 했다. 이에 따라 24일 열리는 결심 공판에서는 해당 문건 작성 경위와 사건 관련성을 설명하는 검찰의 증거기각 이의 신청과 양측 최후진술이 있을 예정이다. 검찰 구형도 다음 기일로 미뤄졌다.
그러나 재판부가 결정적 증거를 기각한 것을 두고 논란이 분분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의 적법한 직무 범위에 대한 해석이 공판 쟁점 중 하나였는데, 해당 보고서에 담긴 여당 선거전략 마련 행위는 국정원 직무 범위에 해당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증거 기각이) 정치적 성향이나 사적 이해관계와는 전혀 상관 없다”라며 방청객에게 오해하지 말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긴 시간 수사하면서 미리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검찰 책임도 있다”고 지적했다.
피고인신문만 진행된 이날 공판에서 원 전 원장은 “기억 나지 않는다” “지시하지 않았다” 등 이전 입장을 되풀이했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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