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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사랑할 때와 미워할 때, 그리고 미혹

입력
2017.07.10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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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에게 사랑하는 여인이 생겼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녀를 소개하고 자랑했다. 그녀가 바라는 것이 무언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항상 주위 사람들에게 그 내용을 물어보며, 자기 힘으로 도와줄 수 있는 바를 찾으려 노력했다.

그러다 둘 사이가 틀어졌다. 더 이상 K는 그녀를 만나지 않는다. 아니 이제는 증오한다. 그

동안 자기가 얼마나 그녀를 위해 노력했는지 말하면서. 정말 뜨거운 맛을 보여주고 싶다고 분노한다.

어느 영문학 교수님 책에서 <논어>의 한 구절이 인용된 것을 보았다. ‘애지욕기생(愛之欲其生)’. ‘사랑할 때는 그 사람이 살기를 바란다.’ 사랑의 진정한 의미는 그 사람을 얽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자기 뜻을 펼치고 살아가도록 바라는 큰 마음을 갖는 것이라는 취지의 해설이 붙어 있었다. ‘그 사람이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사랑이라...

그러다 뒤늦게 논어를 제대로 읽어보면서 위 문장의 함의(含意)가 조금은 다르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위 문장은 <논어> 안연(顏淵)편에 나오는 문장인데, 해당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는 그를 살리고 싶어하고 누군가를 미워할 때에는 그가 죽기를 바라니, 이미 누군가를 살리려 하고 또 죽기를 바라는 게 바로 혹(惑, 미혹)이다.’ 공자는 ‘미혹됨이 무엇입니까?’라는 제자 자장의 질문에 답하면서 ‘사랑할 때의 마음과 미워할 때의 마음이 완전 뒤바뀌는 그 자체’를 두고 미혹함이라 답했다.

사람을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은 인간에게 속하는 반면 삶과 죽음은 인간 너머에 있는데 그것을 혼동하니 그것을 두고 미혹된 것이라 했다. 따라서 미혹되지 말고(불혹ㆍ不惑) 사리분별력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다. 이렇듯 원래 논어에 나오는 ‘애지욕기생’은 사랑의 정의(定義)를 멋있게 표현한 말이 아니라, 인간이 타인을 파악하는 과정에서의 미혹됨을 경계하라는 의미의 말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다가 얼마 지나지도 않아 그 사람을 미워한다. 왜 그럴까? 그 사람이 달라져서일까, 아니면 내가 그 사람을 처음부터 잘못 파악해서였을까? 물론 사람이 변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오히려 내가 그 사람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가 뒤늦게 실체를 깨닫고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고는 말한다. “그 사람이 날 속였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 사람이 날 속인 게 아니라 내가 날 속인 것이다. 그 사람이 좋아서, 그 사람의 실체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내가 만든 허상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만날 때 그 사람의 실상을 샅샅이 파악하고서야 좋아할 수 있다면 우리모두 최첨단 수사기법이라도 갖추어야 한단 말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대신 논어의 위 문장은 이렇게 읽어보자. “누군가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은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파악하는가에 달린 문제다. 내게서 비롯한 것이지 그 사람에게서 비롯한 게 아니다. 그런데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가 살기를 바라다가 마음이 바뀌어 그 사람을 미워하고 잘못되기를 바라는 것. 공자는 그러한 마음의 불안한 널뛰기를 ‘미혹(迷惑)’이라고 했다.”

공자는 나이 40에 불혹(不惑), 즉 미혹되지 않았다고 말했다(<논어> 위정편). 여기서의 불혹은 사람을 파악함에 있어 내가 만든 허상을 바탕으로 무턱대고 사랑하거나 미워하지 않는 단계를 가리킨다. 같은 사람을 두고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면, 그리고 그것 때문에 내가 힘들어 미칠 지경이라면, 오히려 문제는 자신에게, 내가 사람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에 있다.

공자는 그런 우리 어깨를 툭 치며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스스로 미혹에 빠졌음을 인정하고 그 마음을 찬찬히 접기 위해 노력하시길. 힘들겠지만, 그래야 군자가 아니겠소, 허허허!”

조우성 변호사ㆍ기업분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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