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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레이디 버드 존슨(7월 11일)

입력
2017.07.10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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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든 존슨의 부인 레이디 버드 존슨은 남편의 임기가 끝난 뒤로도, 2007년 숨질 때까지 환경운동가로 일했다.
린든 존슨의 부인 레이디 버드 존슨은 남편의 임기가 끝난 뒤로도, 2007년 숨질 때까지 환경운동가로 일했다.

법치국가에서 대통령 가족이나 사적인 인연에 자동적으로 부여되는 법적 권력은 없다. 하지만, 한국 현대사만 보더라도 어느 정권에서든, 그들은 적잖은 권력을 행사해왔고 대부분 국가와 국민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측근 권력은 적을수록 좋지만, 드물긴 해도, 그들의 존재가 대통령과 국가에 값졌던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 루즈벨트의 부인 엘리노어 루즈벨트의 활약이었지만, 36대 대통령 린든 존슨(1908~1973)의 부인 ‘레이디 버드 존슨’(본명은 Claudia Alta Taylor, 1912~2007)도 미국인들이 귀하게 추억하는 이들 중 한 명이다. 텍사스의 대지주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유산으로 물려받은 돈으로 37년 남편의 하원의원 선거 자금을 댄 데서부터 대통령 당선과 재선출마 포기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부침의 모든 고비에서 남편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조언자로, 특히 정서적 버팀목으로 곁을 지켰다. 린든 존슨은 감상적이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면이 있었다고 한다.

케네디 정부의 부통령이던 린든 존슨은 케네디 사후 당시로는 역대 최고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돼 꽤 근사한 인권정책과 의료개혁, 도시개발, 공교육 및 빈곤 퇴치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베트남전쟁과 반전 여론에 밀려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 중 한 명으로 임기를 마쳤다. 유년시절부터 텍사스의 들꽃을 사랑했다는 레이디 버드 존슨은 대통령 부인이 된 뒤 환경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섰고, 미국의 고속도로변에 선 광고판을 추방하고 그 자리에 꽃과 나무를 심자는 ‘고속도로 미화법안(일명 레이디 버드 법안)’의 제정 로비를 주도했다. 존슨 정부의 인권정책에도 레이디 존슨의 의지가 작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레이디 버드 존슨은 백악관에 든 뒤 매일 한 시간씩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일상을 기록, 무려 170만 단어 분량의 <백악관 일기>(1971년 출간)를 남겼다. 린든 존슨이 68년 3월 재선 불출마를 선언하기 꼭 1년 전, 레이디 버드 존슨은 “우리가 또 한 번의 4년을 여기서 버텨낼(endure) 수 있을지 모르겠다. ‘버텨낸다’는 말을 난 사전적 의미 그대로 쓴다”고 일기에 썼다. 남편 퇴임 이후에도 그는 환경운동을 지속했고, 그 공로로 2007년 대통령 자유메달을 받았다. 그 해 7월 11일 별세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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