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도쿄에서 6천명의 조선인이 학살되고 이를 은폐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에 박열(이제훈 분)과 후미코(최희서 분)라는 인물은 일제에 정면으로 맞섰다. 이들의 모습을 그린 영화 ‘박열’은 여타 근대사를 다룬 영화들처럼 억울한 상황을 늘어뜨려 놓거나 감성을 자극하지 않는다. 대신 부조리한 상황을 전한 뒤 그것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이준익 감독은 먼저 일본에서 현재 사용하는 1만 엔(円) 지폐에 그려진 인물인 후쿠자와 유키치를 언급했다. 그는 일본의 ‘탈아론(아시아를 벗어난다)’을 최초로 주장했던 인물이자 제국주의를 옹호했던 인물이다. 이준익 감독은 “여전히 그런 사람이 만 엔에 쓰인다는 것은 일본 정권이 그를 계속 지키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은 관심이 없으니까 지금도 반복적 프레임에 갇혀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그래서 식민지 근대화론이 버젓이 나오는 것이 아니냐”며 “‘박열’은 그 틀을 깨기 위해 찍은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계속 우는 것 말고는 틀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도, 깨면 뭐가 나오는지도 모른다. 애초에 ‘박열’은 탈민족주의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 사람은 나쁘고 조선 사람은 착하다’라는 이분법은 가장 간편한 이야기 구조겠지만, 이준익 감독이 현대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것과 조금 차이가 있다. 심지어 독립투사들마저도 명과암을 함께 다룬다. 그래서 이준익 감독의 ‘동주’나 ‘박열’을 볼 때 물음표가 생기기도 한다. 분명히 우리가 아는 독립투사들은 높은 반열에 올라 있는 ‘히어로’인데, 그의 고민을 듣고 있자니 어색한 것이다.
이준익 감독은 ‘박열’과 쌍둥이처럼 닮아있는 ‘동주’를 언급하며 이야기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이준익 감독은 “윤동주도 후대 사람이 과하게 미화시킨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의 감성으로 동주로 가둬버리고, 동주는 순수할 것이라는 헛된 생각을 한다. 막상 사실적 근거들로 보니 동주는 열등감에 시달리는 인물이었다. 몽규에 비해서 학교도 떨어지고 상도 못 받고 독립투쟁에 참여도 못한다. 그 열패감은 우열의 문제가 아니다. 기질의 문제다. 동주는 시대와의 아픔을 내재화시켜서 시를 남겼는데, 이런 동주의 식물적 기질은 나약한 게 아니다. 식물은 바위를 뚫는다. 동주의 식물적 기질의 신념은 70년이 지났어도 지금 우리의 가슴을 뚫고 있다”라며 우리가 보지 않으려고 한 부분을 드러낸 까닭을 밝혔다.
‘박열’에서는 한국인에 동조하는 일본인, 동조했다가 배신하는 한국인 등의 갈등이 눈길을 끈다. 특히 일본인이지만 조선인과 함께 했다가 다시 배신하는 하쓰요(윤슬 분)의 모습은 이 영화에서 가장 예상치 못했던 갈등으로 볼 수 있다. 박열과 후미코의 예심판사인 타테마스(김준한 분)과 이들의 감옥을 관리하는 사람 또한 철저히 일본 편에 있다가 나중에는 박열과 후미코 편에 서게 되며 딜레마를 겪는다. 이에 대해 이준익 감독은 “92년 전 이야기이고 생경함 때문에 어색해 보일지 모르지만 아주 자세하게 설명했다. 게다가 불령사는 조선인과 일본인 구별 없는 조직이었기 때문에 갈등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준익 감독이 선악(善惡)을 조국으로 나누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는 민족주의자나 사회주의자가 아닌 아나키스트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박열 역시 사회주의자가 아닌 아나키스트이며, 극중 그는 아나키즘을 사회주의보다 더 우위에 둬 설명하며 정체성을 계속 강조한다. 실제 박열이란 인물이 아나키스트이기에 고증에 의한 내용이기도 하지만, 아나키즘에 대한 이준익 감독의 애정이 묻어난다. 실제로 이준익 감독이 아나키즘을 지지한다고 봐도 될까.
이준익 감독은 “나만 아나키스트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당신도 아나키스트다. 본질은 권력에 저항하는 것이다. 당신도 부당한 지시를 받으면 저항할 것이다. 저항할 때 그 목표는 권력자의 권력을 뺏는 것과 상관없이 저항하는 것이 아닌가. 동물 애호가가 동물을 학대하는 인간을 비난하는 게 동물이 권력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래서 페미니스트와 아나키스트는 같다고 볼 수 있다. 여성이 비하당하는 것을 저항하는 것이다. 이게 아나키즘이다. 공산주의자는 노동자 계급의 권력화다. 그 모순으로 20세기에 파멸해버린 것이다”라며 “공산주의들이 가장 무서워한 게 아나키스트다. 유럽과 일본은 이것을 직접 겪어 알고 있다. 그래서 일본의 첫 번째 대역죄인이 아나키스트 최초로 도입한 사람이다. 두 번째 대역죄인은 극중 히로히토 황태자를 저격했던 난바 다이스케다. 그리고 세 번째가 박열과 후미코다”라고 설명했다.
이주희 기자 lee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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