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구장에서 17년을 달린 ‘적토마’의 질주가 멈췄다. LG 팬들을 웃고 울렸던 응원 구호 ‘LG의 이병규’도 마지막으로 잠실구장에 메아리 쳤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한 이병규(43ㆍ스카이스포츠 해설위원)가 LG 역대 가장 성대한 은퇴식을 끝으로 정든 그라운드와 작별했다.
이병규는 9일 잠실구장에서 2만 여명의 관중과 선ㆍ후배들의 축복 속에 은퇴식 및 영구결번식을 치렀다. 경기 종료 후 영구결번식이 거행된 뒤 LG의 영구결번 1호인 김용수 전 코치가 이병규에게 꽃다발을 전하는 뜻 깊은 순서도 마련됐다. 이병규는 “무관의 영구결번이라 팬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이병규의 영구결번은 KBO리그 역대 13번째인데 사고사한 김영신을 제외한 앞선 11명과 달리 우승 경험이 없다.
이병규는 은퇴식을 앞두고 “그냥 운동 끝나고 팬 사인회 한 느낌이었다”고 애써 덤덤하려 했지만 정작 17년 현역 시절의 영상과 어머니의 영상 편지가 전광판을 통해 흘러나오자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특히 이병규는 슈퍼스타들의 은퇴식 때 카퍼레이드로 그라운드를 도는 마지막 순서에서 걷고 싶다고 구단에 제안을 했다. 희로애락을 함께 한 잠실구장의 흙을 마지막으로 밟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병규는 팬들이 목놓아 외치는 마지막 응원가를 뒤로 한 채 제2의 인생을 향해 그라운드에서 퇴장했다.
단국대를 졸업하고 1997년 1차 지명으로 LG 유니폼을 입은 이병규는 신인왕으로 화려하게 데뷔해 프로 17시즌 통산 1,741경기에 출전해 타율 3할1푼1리(6,571타수), 2,043안타, 972타점, 161홈런, 992득점, 147도루를 남겼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 3연패를 포함한 최다안타왕 4차례와 타격왕 타이틀 두 번을 가져갔고,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최다 수상(6회)과 올스타전 MVP(2011년)도 차지했다.
대기록도 많이 남겼다. 1999년엔 잠실구장 최초의 30홈런-30도루를 기록했고, 2013년 7월5일 목동 넥센전에서는 최고령(만 38세8개월10일) 사이클링히트를, 7월10일 잠실 NC전에서는 10타석 연속 안타 신기록을 작성했다. 2014년 5월6일 잠실 한화전에서는 역대 최소경기 2,000안타의 금자탑도 세웠다. 한 팀에서만 기록한 최초의 2,000안타이기도 했다. 나쁜 볼도 손을 대는 ‘배드 볼 히터’였지만 볼을 쳐서 안타를 만들어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평가 받는다. 국가대표로도 프로 2년차인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홈런 4개를 포함해 12타점을 올려 금메달의 주역이 됐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에도 이병규가 맨 앞에 있었다.
유일한 아쉬움이 우승이었다. 이병규는 고별사를 통해 “2016년 10월8일(현역 마지막 타석)과 2013년 10월5일(11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 확정 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서 “저 역시 우승이라는 선물을 못 해드리고 떠나는 점을 아쉽고 죄송하게 생각한다. 후배들과 선수단이 더 단단해져서 LG 팬들의 숙원을 풀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병규는 경기 전엔 시구자로 마운드에 섰다. 시타는 야구선수로 대를 잇고 있는 첫째 아들인 승민(도곡초 6학년)군이 맡았다. 경기 전 이병규의 초등ㆍ고교ㆍ대학교 은사와 1997년 이병규의 입단 당시 감독인 천보성 전 LG 감독이 한 자리에 모여 제자의 새 출발을 축복했다.
한편 이날 경기는 LG가 한화를 3-2, 7회 강우콜드게임 승으로 제압했다. 대구에선 삼성이 넥센을 7-2로, 창원에선 NC가 두산을 9-4로 각각 꺾었다. SK는 부산에서 롯데를 6-0으로 눌렀다. 수원 kt-KIA전은 2회말 도중 내린 비로 노게임 선언됐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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