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헤겔(1770~1831)은 “끊임 없는 갈등을 통해 사상의 체계 역시 산산이 부서진 뒤, 다시 모순이 적은 체계가 등장하는 변증법적 역사가 되풀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은 결국 ‘근원적인 모순’이 없어진 상태, 곧 갈등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상태에 도달한다”며 그런 상태를 ‘역사의 종언’이라고 일컬었다. 거기서 영감을 얻은 미국 철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1990년대 초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간 경쟁이 자본주의의 승리로 끝났다며 저서를 통해 다시 한 번 ‘역사의 종언’을 선언했다.
▦ 하지만 후쿠야마는 이내 대대적 비판에 직면했다. 그 비판 중 하나가 국가 체제로서의 현실 사회주의는 붕괴했지만, 역사의 종언을 수긍할 만큼 자본주의가 모순 없는 상태에 이르지는 못했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그런 비판을 뒷받침하듯, 이후 진행된 ‘세계화’에 맞춰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부의 양극화, 저성장, 실업 증가 등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이 오히려 증폭되는 듯한 현상이 빚어졌다. 자본주의에 대항해온 사회주의 체제는 몰락했지만, 이제 자본주의 내부의 저항운동이 거세졌다.
▦ 하지만 현행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인식과 저항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인식은 중구난방이고 주장은 상충한다. 일례로 영국의 ‘브렉시트(EU 탈퇴)’나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집권 등은 모두 점점 심각해지는 자본주의 모순에 대한 대중적 저항의 결과이지만, 결코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되지는 못한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만 해도 국제적 갈등을 야기할 보호무역주의와 ‘파리협약’ 탈퇴 등으로 현실화했기 때문이다.
▦ 혼란은 최근 끝난 ‘G20 정상회의’에서도 드러났다. 세계화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한 공동선언문은 ‘보호주의와 맞서 싸울 것’이라면서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의식해 ‘적법한 무역 보호수단의 역할을 인식한다’는 식으로 꼬리를 내렸다. 헷갈리기는 ‘웰컴 투 헬(Welcome to Hellㆍ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이라는 구호를 내건 시위대도 마찬가지였다. 반세계화 주장은 유럽 난민 문제와 어긋나고, 트럼프에 대한 혐오는 실업에 저항하는 반(反)자본주의 구호와 충돌한다. 이처럼 싸울 대상조차 오리무중으로 뒤엉킨 세계의 혼돈이야말로, 시위대가 절규한 ‘지옥’ 아닐까.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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