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야 한다는 것밖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내윤한(23ㆍ동아대 국제관광학2)씨는 지난달 24일 한낮 최고기온이 섭씨 52도에 육박하는 중국 몽골고원의 고비사막을 걷고 있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사막길은 걸음걸이를 엄청 힘들고 더디게 했고 자신했던 체력은 날이 지날수록 바닥을 드러냈다. 극한의 상황은 내씨에게 생존 본능을 일깨우게 할 만큼 가혹하기만 했다. 수분 증발을 막기 위해 미지근한 물을 팔 토시에 적셔 가며 힘겹게 발걸음을 옮긴 내씨는 뒤처지다 따라붙기를 반복하면서 행렬과의 이탈과 회합을 이어 갔다.
올해 전 세계 120여명이 참가한 고비사막마라톤대회. 내씨는 따가운 뙤약볕 아래 7일간 장장 250㎞의 사막을 걷는 마의 대장정에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옷과 식량, 취침장비 등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장비를 직접 짊어지고 걸어야 한다. 주최측은 하루 9ℓ의 물만 제공한다. 대회는 매일 오후 7시까지 중간지점을 통과하지 않으면 탈락 처리해 아침 일찍부터 밤 늦도록 걸어야 하는 극한체력을 요구한다.
내씨는 지난 4월 26일 해병대를 전역하고 국내 하프마라톤과 풀마라톤대회를 완주하며 체력에 대한 자신감을 키워 왔지만 사막에서의 마라톤은 상상하던 그 이상이었다. 대회 첫날부터 열사병에 걸린 참가자들이 속출했다. 걷는 내내 시시각각 찬물 한 잔이 못 견디게 그리웠다. 특히 마지막 코스인 82㎞ 구간은 밤을 새우며 걸어야 해 극도의 피로감과 졸음과의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내씨는 “보이지만 닿을 수 없는 결승선이 희망고문처럼 느껴졌다”며 “정신을 놓았다가는 중도포기할 것 같아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마침내 통과한 결승선, 그러나 완주의 기쁨은 잠시였다.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뜻밖에도 안타깝게 완주를 못한 한 한국인 여성에게 이스라엘 국적의 참가자가 자신의 완주 메달을 건네는 장면이었다. 내씨는 “그 이스라엘 참가자가 ‘무슨 말이든 위로가 될 수 없지만 나도 여러 번의 도전 끝에 얻은 메달로 네 행운을 빈다’고 했다”며 “나는 어떻게 위로할 지 몰라 망설였는데, 행동으로 위로를 보여 준 그의 모습이 아주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마라톤은 내씨에게 ‘인생은 마라톤’이란 교훈을 남겼다. 내씨는 마라톤을 마치자마자 지난 1일 인도로 어학연수를 떠나 내달 26일까지 머물 예정이다 끊임 없는 ‘인생 마라톤’에 나선 것이다. 내씨는 “누구나 본인은 특별하다고 생각하거나 그렇게 되길 원한다”며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제는 평범하다는 걸 받아들이고 하루하루를 마라톤처럼 성실히 살아가는 것이 더 값진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부산=정치섭 기자 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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