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민족 지방정권’ 문구는 삭제
유리한 자료로만 꾸며 오해 소지
답사팀 따라다니며 별도 해설 저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힘은 역시 컸다. 그간 사진으로 봐온 장군총은 약간 황량한 느낌이었다. 고구려 장수왕릉으로 알려진 장군총은 두부 만지듯 돌을 정교하게 다듬어 쌓아 올렸다는 적석총(積石塚)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그 때문에 ‘동양의 피라미드’라 불리긴 하지만, 그 신비감 못지 않게 그간 너무 버려져 있었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나 동북아역사재단 주최 고구려유적답사여행으로 최근 현장을 가보니 주차장, 매표소, 화장실 등이 잘 갖춰져 있었다. 장군총으로 올라가는 길도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었고, 장군총 앞에는 간단하지만 깔끔한 정원도 꾸며두었다. 중국어ㆍ영어ㆍ한국어ㆍ일본어ㆍ러시아어 5개 국어로 쓰여진 안내판도 있었다. 유적지도 예쁘게 단장되어 있었고 갖가지 보강공사들이 진행 중이었다.
동북공정이 전 국민적 분노를 자아내긴 했다지만, 어쨌건 중국이 2004년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 일대 고구려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덕분이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바로 맞닿아 있는 지안은 고구려 초기 수도이자 평양 천도 이후에도 부도(副都) 역할을 맡았던 국내성, 그리고 국내성의 배후산성인 환도산성이 있던 곳이다. 광개토대왕비, 장군총 등 수많은 고구려 유적들이 남아 있다.
장군총이 화사한 모습으로 변신했다고 하나 장군총을 둘러싼 보이지 않은 장벽은 높아졌다. 장군총에 대한 설명은 오직 중국측 안내원의 설명만 허용됐다. 한국 답사팀의 별도 설명은 금지됐고, 혹시 있을 설명을 막기 위해 유적지를 둘러보는 동안 중국측 직원이 일행을 따라다녔다. 이유를 묻자 “우리도 모른다. 올해부터 그리 하라는 지침에 따른 것일 뿐이다”는 답만 돌아왔다.
앞서 들렀던 지안박물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안박물관에선 고구려를 지칭하는 동북공정식 표현 ‘중국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란 어구를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었고,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고구려 민족’이란 표현만 쓰이고 있었다. 하지만 지안박물관에서도 중국측 안내원의 공식 설명만 허용됐다.
안내원의 설명을 한 구절로 줄이자면 “그저 모든 것이 중국의 영향”이라는 것이었다. 고구려사 전공자인 동북아역사재단 이정빈 연구위원은 “너무 일방적 영향만 강조해서 마치 미국식 서부개척사처럼 들린다”고 말했다. 중국이나 미국이나, 겉으론 달라 보여도 속내는 비슷하다는 지적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성사됐다면 “역사에는 오직 하나의 해석만 있고 그것만 들어야 한다”는 중국측의 이런 태도에 대해 우리는 비판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시장의 논리’를 강조한 답사팀 심재훈 단국대 사학과 교수가 제안하는 접근법은 흥미롭다. “중국 입장에서 보자면 지안 일대는 개발에 따른 수익을 누리기 어려운 곳이에요. 어찌 보면 사회주의 국가니까 이런 투자가 가능한 것이기도 해요. 그렇다면 중국인들에게 그래도 이 곳을 꾸준히 찾을 이들은 다름 아닌 한국인이라는 점을 꾸준히 설득할 필요가 있어요.”
지안=글〮사진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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